본문 바로가기

DC

[브루슨]시간이 지나도

 브루스 간호하는 제이슨



[브루슨]시간이 지나도


브루스 웨인이 아플 때가 언제 있을까?

제이슨은 브루스와 있던 시절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기억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 중에 유독 남는 기억들 또한 있었다.


"후우----"


몽글몽글 공중에서 퍼지는 연기가 짙은 색에서 순식간에 흐려져 사라진다.

웬 일로 작은 짹짹이나 큰 짹짹이 없이 돌아다니는 커다란 박쥐를 보며 레드 후드는 그 붉은 헬멧 아래에서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가 기억하기로서니 바로 엇그제에 그들의 무전으로 브루스가 꽤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느니 다쳤다느니 뭐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빤히 보는 건물 아래의 그는 확실히 움직임이 조금 둔해보이기는 했다. 손 안에 들린 총구로 헬멧의 머리부분을 긁적였을 때쯤 쓰러진 빌런들을 두고 다시금 로프 총을 쏴 다른 건물로 날아가는 박쥐가 보였다.

그 공중을 나는 모습이 비틀거려 저도 모르게 제이슨은 한숨을 터트렸다.

가볍게 발을 굴러 건물을 건너 건너 사박 워커 굽이 건물 천장을 긁으며 검은 날개 뒤에 선다. 기울인 귀에 막힌 듯한 숨소리가 음성변조기를 통해 갈라져 흘러나온다.


"제이슨-"

"오랜만이에요, 영감님."


퍽- 무슨 생각인지 브루스가 채 알 겨를 도 없이 거칠게 총의 개머리판이 카울의 뒤를 두드렸다. 핑-하니 도는 시야에 평소 같지 않은 몸이 쉬이 쳐졌다. 브루스는 숨을 급하게 쉬었지만, 이 집 나간 탕아는 꽤 그를 아는 사람답게 두 번째 타격을 주어 결국 그 처지는 몸을 바로 잡을 새 없이 쓰러지게 만들었다.

무선에서 치직거리며 바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브루스의 어두워지는 귀로 알프레드와 대화하는 제이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


"......음.."


가물가물 눈을 뜨자 기이하게도 바로 옆에 제이슨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게 정말로 이상하게 느껴져 브루스는 눈가를 움찔거리며 고개를 그 쪽으로 움직였다.

둔해진 감각에서도 느낀 것처럼 제이슨이 그의 머리 맡에 앉아 총구를 닦고 있었다. 흐린 눈가에 인상을 찌푸려 시야를 확보하자 느끼지 못 했던 물수건이 그의 눈가를 조금 가리고 있었다. 더듬더듬 손을 들자 손에도 갖은 테이핑과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익숙하고 익숙한 솜씨에 브루스가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이슨."

"일어났으면 이제 나가요."


답지 않았던 친절아닌 친절은 여기까지라는 듯이 날카롭게 자르는 목소리에도 브루스는 어쩐지 몽글거리며 뜨는 기분을 느꼈다. 손에 잡히는 아직도 찬 물수건이 꽤나 오래 여기 앉아 꾸준히 간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고, 한결 나아진 몸상태가 그 변하지 않는 정성과도 같은 솜씨를 알려주었다. 몸을 일으키자 벗겨진 몸 아래 붕대가 야무지게 둘러져 있었다. 옅은 약냄새가 새로 간 붕대 아래에서 났다.

다시금 돌아본 자리에는 이제 다 닦은 총을 확인하는 제이슨이 있었다.


이상한 날이야. 자기 세이프 하우스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내면서(물론, 들킨 세이프 하우스였지만) 저를 데려와 간호하는 제이슨이라니.... 브루스는 눈을 껌뻑이며 어느 날엔가의 제이슨을 떠올렸다.

제이슨과의 시간은 짧았지만, 그가 아팠던 날은 기억했다.


작은 손이 투덜대면서도 연신 알프레드를 도와 물수건을 갈아주고 부러 옆에서 알짱거리며 제가 무슨 일이라도 칠까봐 기웃거리던 모습이 선하게 다시금 떠오른다.


달칵. 잠금장치를 확인하는 큰 손이 익숙하게 총을 제 옷 안으로 쑤셔넣는다.

뭐라 할 말이 있었을까? 그런 생가도 들었지만 이내 브루스는 그 어느 날엔가 말해주지 못 했던 말을 먼저 꺼냈다.


"제이슨."

"........"


옷자락에서 담배를 꺼내는 제이슨이 흘긋 돌아본다.


"고맙다."


파삭. 제이슨의 잇사이에 낀 새담배의 필터가 뭉게졌다.

어서 나가기나 해요! 소리치는 제이슨의 귓가가 조금 붉게 보인 것은 착각일까? 자리를 비키는 제이슨의 뒷모습을 한 참 본 브루스는 이내 한 쪽 의자 위에 잘 걸쳐진 제 코스튬을 주우며 옅게 웃었다.


어린 날의 제이슨이 다시금 알짱거리는 것 같이 문 근처에서 그의 인기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