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위/조아라]대좌님! 우리 대좌님!-3
Chapter2. 연어와 사는 법
찡찡거리는 해랑을 좌절시키니 이내 류환이 눈을 껌뻑이며 태원을 본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네까, 총교관 동무.”
어렵사리 뱉은 말에 태원은 눈을 깜빡이며 류환을 빤- 쳐다보았다. 나무색의 렌즈에 가린 깊고 옅은 적갈색의 눈이 류환의 옅은 갈색의 얼핏 반짝이는 금색으로도 보이는 눈을 바라본다. 그 눈이 가끔 너무 깊어... 류환은 무섭기도 했다.
“정찰- 비슷한 거.”
“...??”
태원의 말에 류환과 뭇 다른 두 간첩이 눈을 깜빡인다. 비슷한 거? 비슷한 게 뭐네? ...알겠습니까, 해랑 조장님. 뭐네? 뭘라. 묻지 마. 해랑의 고개가 연신 왔다갔다한다. 태원은 그 모습이 조금 한심해 보였다.
태원은 자연스레 주머니를 뒤졌다. 걸리적거리며 손가락에 걸리는 종이 같은 재질의 무언가가 집힌다. 대일밴드 하나. 아니, 그 외에도 약품 종류는 언제나 그의 주머니를 채운다. 그 약품 중에는 ‘그것’ 또한 포함되어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아득한 옛적부터-
“고개 돌려.”
“...네?”
“...돌려.”
태원의 갑작스런 말에 류환이 화들짝 티나지 않게 놀란다. 그런 그의 볼 위에 데일밴드 하나가 조용히 붙었다. 딱히 뼈도 안 보이는데.... 태원은 흠칫- 저도 모르게 졌어든 생각에 놀랐다. 음... 그렇구나. 뼈가 안 보이는구나. 태원은 어쩐지 씁쓸함을 느꼈다. 태원의 손이 잠시 류환의 덥수룩한 머리를 토닥인다.
“?!??”
“....왜 내래는....”
그 모습에 해랑이 좌절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 태원은 등 돌려 천천히 옥탑방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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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방글방글 웃는 사내, 일명 선상-이라고 불리는 이의 이름은 ‘최 진우’로 태원에게는 그 날을 기점으로 옆에서 준비를 도운 사내였다. 그는 여전히 굉장히 기분 좋은 얼굴로 태원을 바라보았다. 아니, 뭘 그리 쪼게는 거지? 리해랑이에게 옳았나? 이런 것도 옳나? 태원은 점점 복잡해지는 머리를 조용히 죽이며 한 숨을 내셨다.
“...왜 보는데.”
“염색이 참 잘 된 것 같아서요. 과연 내 솜씨.”
작은 태원이 찬찬히 썩어 들어가는 얼굴을 안에서 매만진다. 그래, 나도 이해해. 이 심정. 썩어 들어가는 표정이 참으로 리얼한데 왜 밖으로 표현을 못 할까. 태원은 이를 북북 갈았다. 망할..... 이 녀석 4차원이었지. 태원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녀석이다.
“후..후후훗- 과연 미청년의 오라는 아무나 뿜는 게 아닌 듯-”
“.....좀.”
태원의 한 숨이 요즘 따라 깊어갔다.
“아- 이번에 서해에서 일 터질 거라는 거 아시죠?”
조용히 내셔진 한 숨이 급격히 정지한다. 이 망할 놈... 사레들렸잖아. 터져 나올 것 같은 기침을 삼키며 꼭 이런 타이밍에 그 방글한 얼굴로 말을 하는 상대에 태원은 터져 나오는 한 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건 또 어디서 안 거냐. 태원의 깊은 연한 적갈색 눈이 진우에게 향했다. 그의 눈에 의문을 읽은 태원은 방긋- 웃었다.
“이야- 요즘 위에서 계속 서해 쪽 정보를 받아가잖아요? 그냥 한 번 찍어봤죠. 진짜인가 봐요?”
망했다. 작은 태원이 뭉크의 절규마냥 비명 질렀다. 앞에 있는 상대는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괴물 같은 능력을 지녔으니.... 아마도 빠른 시일 내로 그에 간한 ‘결론’에 가까운 근사치의 정보를 찾을 것이다. 무...무서운 간나 같으니라고.... 태원이 속으로 부르르- 떨 동안 사내, 진우는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슬쩍 입가를 부들거렸다. 하.... 이..이런... 우..웃으면, 앙돼! 이.. 이 양반, 분명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을 거야! 근사치에 가까운 결론. 과연이다.
“아- 큽... 그 네모난 싸갈놈 정보 더 알아놨는데... 드릴까요?”
빙글거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안으로 삼키며 말했다. 그런 진우를 흘끔거린 태원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터질 뻔 했다.
“.......”
“........”
“...............”
“...그만 웃어.”
“..큽-”
“..웃지 마.”
속으로도 웃지 마.
태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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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은 조용히 한 주유소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굳이 대좌님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며 구한 해진의 아르바이트였다. 그런 그의 눈에 잠시 잠깐 빨간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걸친 류환이 보였다. 아.... 해랑에게 뺏긴 비니가 류환의 머리에 있다. 태원은 눈을 껌뻑였다. 왜 저게 저기로 갔을까-? 그것은 미스-테리...... 작은 태원이 한심하다는 듯이 숨을 토해낸다.
“......”
잠시 그들의 행적을 본 태원은 이내 휙-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가는 길은 가로등조차 없는 골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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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그 쪽도 왔나요?”
방글거리는 사내가 그 곳에 있었다.
류환이 눈을 얇게 뜨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해진은 유심히 상대를 관찰하듯이 바라보았다.
낮의 그 헐렁해 보이는 옷 대신 얇은 검은 목티에 검은 청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검정 색 일색인 사내는 안경을 잠시 추켜올리더니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런- 이런... 저희 외의 선객이 있네요. 아시는 분이죠?”
방긋-웃는 얼굴이 일견 수상쩍기 그지없다.
“........”
류환의 머릿속이 비상등이라도 킨 듯이 반짝거렸다. 흘끗- 본 사내를 지나쳐 들여다 본 안에는 석이 슈퍼 장남인 조 두석이 있었다. 눈을 퍼렇게 물들인 그는 몇 대 맞았는지 코피와 함께 찰과상이 나있었다. 류환은 예상치 못한 인물에 당황했다.
“이야- 곤란하게 됐네요. 그쵸?”
방글거리는 사내는 하나도 안 곤란해보였다. 류환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뭘까- 이 위화감은....
“안 그렇네-? 동무들.”
빙글거리는 입가와 함께 얇게 떠진 눈에 류환은 깨달았다. 아- 동류의 느낌이었다. 눈을 살짝 크게 뜬 류환이 이내 사내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저 보기에는.. 심지어 자신마저 그리 느꼈던 사내는 얼핏 보기에도 남조선의 평범한 이들과 다를 것 하나 없어보였다.
해진이 눈을 땡그러니 뜨며 상대를 훑는다.
“와- 처음보네?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거.”
그리 말하는 상대에게서 연륜이 묻어나 얼핏-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그들을 얇게 뜬 눈으로 빤- 바라보던 그는 이내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거 어디서 났네?”
“...에?”
“그 비니 말이네.”
빙글거리는 얼굴이 좀.. 섬뜻했다. 류환은 비니를 만지작거렸다. 급히 입으면서 쓴 것이라 자신도 얼결에 가져온 것이었다.
“아... 그.. 리해랑의-”
“...흐음- 그렇네?”
그런 그의 눈이 집요하게 류환의 머리에 씌워진 비니를 보고 있었다. 뭐.. 뭐지, 이 찝찝한 느낌은... 류환은 눈을 도륵 굴렸다. 난생 처음 겪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류환을 보던 사내는 이내 다시 안을 들여보았다.
“곤란하네- 저 간나는 언제 나가네?”
류환은 그 때에야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상한 남자다. 류환은 경계를 하며 해진에게 다가가 대뜸 그 머리 위에 비니를 씌웠다.
“어.. 무슨-”
“두석이는 널 본 적이 없지? 이러면 앞으로도 잘 기억하기 힘들 거야. 들어가서 두석은 보내고 적당히 놀아주다 창고를 없애.”
“차..창고도요?”
얼굴을 발갛게 물든 해진의 머리 위에 비니의 모양을 이리저리 잡는 류환의 모습이 꼭 형제같다-고 사내, 진우는 생각했다. 거- 다정해보이네- 빙글거리는 진우의 얼굴은 꼭 개구진 사내아이의 것과 흡사했다.
“해줄 거지?”
“네-”
‘....이야- 홍조.’
진우는 자신 앞에 일어나는 청춘 드라마 한 편을 보며 허허로이 웃었다.
창고 안으로 잽싸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빤- 바라보는 시선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그와 비슷하게 바라보는구나? 진우는 벙글거리는 웃음으로 류환을 바라보았다.
“아- 내래는 최 진우. 28에 음.... ‘위’에 있을 적에는 중좌였네, 동무.”
‘위에 있을 적’.... 무슨 뜻일까. 류환이 얇게 뜬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다 천천히 짧게 경례를 했다.
“원 류환. 24세. 소좌의 직위에 있습니다.”
“기러네? 동무랑 저 아가는 태원 씨 밑에 있었네?”
“...네.”
“그렇구만, 기래. 아- 나오는구만. 자리 좀 피할까?”
태원 씨? 류환의 눈이 얇아져 앞서가는 상대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둔 색의 옷이 척 보기에도 이 가로등이 없다면 분간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뭐하는 이인가- 류환의 눈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류환은 이내 상대를 따라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뒤에서 나오는 두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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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말 없이 사라지는 류환의 등을 보며 진우는 여전히 뻑뻑한 하회탈 같은 미소가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얇게 휜 눈이 류환의 등 위를 한 동안 노닐었다.
원 류환.
24세. 5446부대 오성조 제3대 조장.
가족관계로 어머니 한 분만이 있음. 아버지는 군으로 복무 중 임무 파견 중 사망.
5446부대 들어간 후 며칠 후 어머니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용소에 감. 5년하고 8개월 후 복합 피부병 및 구타, ------으로 사망.
빙긋이 웃는 진우의 눈이 좀 더 휘영청 휘었다. 이 사실을 알면- 넌 어떻게 될까? 빙그레 웃는 얼굴이 꼭 씁쓸해 보였다면 잘 못 본 것일까? 천천히 다시 몸을 돌려 창고로 향한 진우의 등에 달빛 하나 비추지 안았다.
“이야- 거 직살나게 해부렀네?”
“아....”
아직 한 손에 네모난 싸갈놈을 든 해진에 진우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의 발에 즈리 밟힌 남자, 박상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그러고 뵈니 느그 불 어떻게 낼 기네?”
싱글 웃는 모습에 해진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차를... 터트리려고 했는데요..’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폭소를 터트린 진우는 과연 김 태원 대좌 아래에 있던 녀석이라 생각했다. 닮았어. 닮았다고!! 아하하하하!!! 뱃가죽이 땡겨라 끅끅거린 그는 이내 해진에게 싸갈놈과 박상철을 들고 나가라했다.
해진은 흘끗- 진우를 보다 머뭇거리며 한 손에 한 명씩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꿈틀거리며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꼭 뭍에 나온 물고기같다고 그리 생각이 들었다.
“이야이야- 오랜만에 뒷수작 좀 하겠네?”
그런 그는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밀폐된 창고를 휘휘- 둘러본 진우는 이내 방이란 방은 전부 열고 가스 밸브를 열었다. 어떤 곳에는 어쩌다 구멍이 뚫린 것처럼 뚫어놓은 그는 천천히 마지막 작업을 했다.
일정량의 병 안의 술이 떨어지면... 불이 붙도록- 그렇게 마무리를 한 그가 천천히 나온 밖에는 머뭇거리는 그의 기준에서는 아가인 리해진이 있었다.
“이야- 아직도 있었네? 내래는 돌아갔을 기라 생각했는데?”
그의 말에 그를 흘끗- 본 해진은 그의 뒤에 있는 창고를 바라보았다. 멀쩡하다.
“그- 창고 태워야 하는데..”
“아— 그기 걱정이였네, 동무? 걱정말래이. 금방....”
좀 빨라진 걸음으로 해진의 팔을 잡은 진우가 창고에서 점점 멀어졌다. 하염없이 창고를 바라보는 해진을 보며 진우는 설핏 웃어버렸다. 귀엽구만, 기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안에서부터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기절한 덩치 둘도 함께 차 뒤로 와 발로 자근자근 밟으며 여직 창고를 빤히 바라보는 해진에게 말을 이었다.
“터질거니께─”
“..네?”
쾅-!!
해진은 잠시 진우를 돌아보는 사이에 들리는 굉음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화마. 그 곳에 펼쳐진 것은 그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며 간간히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창고는 한 순간에 불에 휘감겨 있었다.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뜬 해진이 휙- 소리가 나도록 진우를 돌아보았다.
“기래... 뭐─ 가스 누출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기니께... 안 그렀네, 동무?”
“.......”
싱긋- 웃는 그 얼굴에 설핏- 경계심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바라본 창고가 거센 불에 허덕이며 타오른다.
“자─ 기럼, 이제 이 쌍간나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볼까?”
사내, 진우는 그렇게 남자 둘을 등에 짊어지고는 사라졌다.
그런 그를 보던 해진도 이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조금.. 알아봐야겠어.’
해진의 눈이 날카로운 빛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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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속보입니다. 서울시 〇〇동의 주류 창고가─]
태원은 집에서 한가로이 들려오는 뉴스의 속보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경찰은 이 사건을 가스 누출에 의한 폭발로─]
들려오는 여성의 말에 코웃음이 쳐졌다. 그럴 리가 없지. 태원은 흘끗- 시계를 보며 혀를 찼다. 분명─ 진우, 그 사내가 했을 법한 일이었다. 이렇게 뉴스가 크게 난 이상 사고-나 사건으로 처리되겠지만, 적어도 어린 해진과 바보 동구인 류환, 그리고 그 곳에 ‘없었을’ 진우를 생각하면 이 일은 그야말로 완벽범죄였다.
들려오는 뉴스의 소리가 점차 싱거워졌다.
그저 그 외의 그 인근 창고 ‘전부’가 화마에 휩싸였다는 말.
그리고-
[신생 조직 상어파- 몰살. 보복 습격으로 추정.]
뉴스 아래로 작달만한 글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 쌀 안 씻었다.”
한가로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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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원은 아침을 차리며 한 숨을 쉬었다.
이놈의 아새끼들..... 태원은 난생 처음으로 간첩 3명이 참으로 불쌍해졌다.
“.......”
막 해체된 게로 담가놓은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을(손질 in 해진표) 보며 어제 먹지 못 한 꽃게를 향한 처절한 눈의 해랑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지긋이- 바라보던 류환과 눈 땡그라니 떴던 해진 또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리해진이는 첫 날의 아침에 눈을 크게 뜨고 놀랐었지- 참으로 납득 가는 이유라 작은 태원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 뭡니꺼?”
“...? 아침.”
“...어... 그-”
태원은 천천히 그 ‘옛날’이나 ‘예전’이나 달라지지 않은 유일한 요리 중 하나인 계란말이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렇게 놀라는 걸까? 태원은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아- 자신이 요리를 해서 그런가.... 태원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해진은 태원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 적응되지 않는 집의 모습에 눈을 똥그라니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아- 그렇지, 자신은 대좌님과 같이 살기로 했지. 해진은 고개를 주억이며 자신이 따라 일어났던 기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쩡-
“.......초..총교관 동지?”
“...왜?”
“...뭐..뭐하십네까?”
“..요리?”
탁탁- 계란을 푸는 손놀림이 꽤나 노련하다. 해진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어- 이거 꿈? 깨어나면 욕하는 거 아니네? 다시 트인 시야에는 여전히 남방에 추리닝 바지를 입고 계란을 다 풀었는지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계란을 붓는 대좌님이 보였다. 어....어어? 해진은 그대로 굳은 채 한 동안 내려온 그 자세에서 멈춰있었다.
“아.. 오늘 학교가지?”
“..네...네? 네.”
“? 음... 그럼 좀 있으면 나가야겠군. 씻고 나오도록.”
여전히 일방적인 그 말에 해진은 삐걱삐걱 저도 모르게 화장실로 들어와 어떤 정신으로 씻었는지도 모른 체 세안을 마쳤다. 어... 뭐..뭔가 이상한데? 세안을 하는 내내- 멍하니 생각하던 해진은 이내 파묻히는 부들한 수건의 촉감에 흠칫-놀랐다. 이기 뭐네? 눈을 깜빡이며 본 그것은 북조선과는 다른 수건이었다. 북에, 군에 있을 적 쓰던 거슬한 천으로 된 수건이 아닌 보슬한 수건에 해진이 눈을 깜빡였다. 수건? 잠시 그 수건을 보던 해진은 얼굴을 푹- 묻어보았다. 킁... 킁-? 그리고 다시 뻣뻣이 굳어버렸다. 어.. 그러니까- 이기는.... 어젯밤 이불에서 나던 그 냄새였다. 그러니까.. 내래 대좌 동지랑 같은 수건을 쓴기네?!?? 어떤 의미에서 쩍-하고 굳는 느낌에 해진은 멍하니.. 한 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나온 화장실 밖의 식탁 위는 신세계였다-라고 해진은 생각했다.
“......왜.. 왠 진수성찬....”
“.......”
태원은 해진의 떠듬떠듬 나오는 말에 자신이 차린 상을 보았다. 어... 이게- 그러니까... 진수성찬이라고 놀란거지? 허-하는 헛웃음이 속에서부터 터졌다.
태원 특유의 몰랑한 계란말이, 매콤한 두부 된장국, 사온 김치와 구운 김에 살짝 진밥이 다인 식단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진수성찬이라고? 태원은 미미하게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들이 살던 부대, 5446부대는 지원금 미달로 그렇게 풍족한 식사가 제공되는 편이 아니었다. 딱히 말하자면... 보통 인민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나은 식단이었다. 5대 조원이 종종 삶은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정도... 그랬었다.
“....남조선에서는 이게 평범한 식단이란 거다. 먹어라.”
“...네.. 넷!”
그리고 그 날 태원은 폭풍 흡입이 무엇인지 눈앞에서 목도했다.
무서운 선스나....]
그 때 마지막에 너무 좀.. 그래, 좀 많이 무서워서 까먹고 있었다.
“...좀 맥여야겠군.”
태원의 한 숨과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바야흐로 간첩 3명은 이유를 알지 못 할 태원의 음식 제공이 시작된 계기였다.
그리고 그 날의 해랑의 집에 들린 태원은 다시 한 번 ‘좀’(!) 맥여야겠다 결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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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은 학교에 와서도 멍하니 머리 안에서 뒹구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 했다. 그... 게..게가- 그리 돼서.. 그리 맛나는게 되는거였네? 아직도 침샘에 침이 고인다. 해진은 입에서 쫄깃하게 씹히던 게와 그 게껍데기에 비벼먹던 밥이 모락모락 떠올랐다. 담백하면서도 짭쪼름한... 아.... 배고프다. 해진은 귓가에 윙윙 울리는 수업 소리가 참으로 고달파졌다.
급식 식단이라고 나온 것도 호화(!)였는데, 대좌님께서 해주시는 음식은 그보다 맛나기 그지없어서....
‘...살아남길 잘 했어.’
해진이 자신이 자랑스러워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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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헤?”
“.......전번에 받았던 공작금은.”
“...기타와 숙박비로...”
“랑 옷이나 그런 걸로 날렸군.”
태원의 한 숨 섞인 말에 해랑은 움찔- 몸을 떨며 정좌를 바로 했다.
갑작스레 처 들어온 태원에 기쁘기도 했으나 휑한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모습이 조금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를 잠시 보던 태원이 방을 둘러보고 이내 개수대를 보았다. ...아침부터 빵부스러기 처먹었냐. 작은 태원이 눈을 가리며 좌절했다. 일 간나들이 조장이란 것들인데.. 다른 놈들은 어쩌고 있것네!!! 물론,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나름 적당한 식단으로 먹고 살고 있다. 단지, 이 셋이 좀... 설정이 거지같을 뿐.
“....하아- 따라 와라.”
“...?”
해랑은 밋밋하게 굳은 웃는 낮으로 쫄랑쫄랑 기타를 어깨에 메고 태원의 뒤를 쫓았다. 가는 중 배달 다녀오는 동구도 덩달아 쫄랑쫄랑 대열에 끼게 되었다. 할매는 그런 동구를 배웅해 주었다.
“잘 갔다오고, 그랴- 선상 좀 많이 도와주부러!!”
“헤헤! 동구 열심히 한다!”
실실 풀어진 웃음을 지으며 손 흔드는 류환을 보며 굳어있던 해랑이 풋-하고 웃어버린다. 그런 해랑의 발을 동구인 류환이 있는 힘껏 실수인 척 밟아버린다.
“큽- 너!”
“흐에- 동구 실수했다. 민수 많이 아픈가?”
뒤에서 투닥이는 소리에 태원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 그래. 니들 참... 잘 논다. 아니, 왜 맨날 투닥이는 거냐, 니들은. 위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시비를 걸던 해랑과 그런 해랑에 한 숨을 쉬던 류환, 그러나 결국 투닥이던 그네들을 떠올리며 태원은 왠지 자신이 지금 잘하는 것인지 한 숨을 쉬었다. 왠지, 밥 주기 싫어진다, 니들. 작은 태원이 눈을 얇게 떴다.
태원은 여는 현관이 왠지 찝찝했다. 뭐지... 이 찝찝함은... 마치, 해랑을 처음 집에 들였을 때의 느낌이야. 살짝 굳은 얼굴로 문을 태원에 해랑과 류환 또한 덩달아 몸을 긴장시켰다.
“.....야. 니가 왜 여기있어.”
“엥? 이래뵈도 이 집 주인입기네다, 내래가.”
“.........”
태원은 오늘도 하늘에 계실 그 분을 불렀다. 오- 갓. 왜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겁니까. 방글거리는 하회탈 진우가 어느 새 게장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런 그를 쭈삣쭈삣 눈을 빛내며 해랑이 돕고 있었다. 너 하지 마. 너 이 새끼 배신임. 그런 해랑을 떨리는 눈가로 보던 태원이 이내 깊은 한 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었다. 하아- 포기하자. 그러면 편해. 태원은 발에 닿는 바닥을 느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기....”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지 말고 묵고 가라.”
“......총교관 동지-!!!!!!!!!!!”
“....윽-”
해랑은 감격에 겨워 몸통태클을 걸었다.
태원은 허리에 데미지-20을 입었다.
류환이 진드기가 된 해랑을 퇴치했다.
태원은 류환에게 호감도+20을 가졌다.
진우는 미친 폭소를 터트렸다.
태원은 진우에게 스트레스+30을 얻었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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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랑 조장이 여기있는 겁니까?”
“......하아-”
한 숨을 내쉬는 류환에 막 학교를 마치고 온 해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짐승같은 반응이었다. 그에 굴하지 않고 해랑은 여전히 행복한 얼굴로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어느 새 집에서 사라진 태원과 진우가 급 그리워진 류환, 24세. 현재 이 중 가장 정상인입니다.
그 후 해랑은 아침·점심·저녁을 태원의 집에 처들어와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해랑을 수습하러 온 류환은 언제나 입 한 가득 무언가를 물고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최씨가 훗날 증언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리해진이 그 뚱한 얼굴을 봤어야 하는긴데!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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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리해랑이 4번째로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의 일이었다.
“....뭐."
"...계란말이 해주시오, 대좌 동지.“
“......꺼져, 이놈아.”
점점 겁 없이 자신의 허리에 서슴없이 달라붙어 징징대는 해랑의 얼굴을 밀어내며 태원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 아색히는 뭔 놈이 날이 갈수록 힘이 세지는거야? 짜증섞인 태원은 자신의 손에 점점 밀려나는 해랑보다도 자신의 힘이 여전히 정정하다는 것을 못 느끼는듯했다.
“크흡- 내래.. 내래- 또-”
“떨어졌냐.”
“으어어헝!”
쿠션을 뭉게며 얼굴을 파묻는 해랑을 보며 태원은 한 숨을 쉬었다. 거 아새끼... 엄청 못 하나 보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 했던 해랑의 기타를 떠올리며 태원은 혀를 츳츠-찼다. 그런 그의 손에 계란 2개가 깨지고 있다.
“리해랑이.”
“크흡-?”
“-저어.”
리해랑의 우리 대좌님이 달라졌어-하는 꿍얼거림이 들렸다. 태원은 혀를 차며 조용히 해진이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이번까지 치면 4번째 떨어진건가? 작은 태원이 안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태원은 한 숨을 쉬고 해랑이 아예 빵을 만들 기세인지 거품까지 올라오는 반죽을 빼들고 달구어놓은 프라이팬에 달걀 반죽을 부었다.
‘그러고보니... 아마도, 해랑에게 처음 먹였던 반찬이 이것이었나-’
큰 달걀을 2개나 깨서 우유까지 부어 만든 달걀말이가 순식간에 순살 당하는 것을 보며 태원은 문득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 얼어붙어 터진 붉은 발이 눈 위에 자국을 남겼을 그 꼬마동무에게는 첫 만남이었을 그 때-
[태원은 자신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지 않게 텅 비어있었다. 겨우 닭알 두어개와 생수 1.5L짜리와 찬밥에 김치가 조금.... 흘끔- 돌아본 뒤에는 여직 자신의 품에 붉은 천자락을 꼭- 품에 안은 어린 아이가 자신이 걸쳐준 군복 상의와 이불에 감싸여 불안한 듯이 눈을 꿈뻑이며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있었다.
“......”
안고 올 때의 그 가벼움이 아직도 팔 안에 남는 것 같다.
리무혁 대장 동지 집에 산다는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마른 몸이다. 그 사용인들의 딸린 갓난애들보다도 마른 것 같다. 급히 도망치듯 올라오느라 제대로 치료조차 못한, 분명 늦게 치료한 덕에 상흔이 짙게 남을 오른 눈이 욱씬거린다. 진통제를 먹는 것을 까먹었군. 그러나, 딱히 문제없었다. 통증은 익숙했으니까-
태원은 계란을 잘게 물과 풀고, 가스레인지 아래에 있는 서랍을 뒤적였다. 기본적인 조미료, 그 중 소금은 있을 것이라-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슬슬 다시 챙겨놔야 될 정도로 양이 적었고, 굳어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천천히 데우고 있던 물을 조금 떠 병에 딱딱히 굳은 소금을 녹여 소금물을 만들었다.
“....”
그런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옆 시선만으로 아이의 움직임을 기척을 살폈다. 조심스레 이불을 꿈쩍이며 바라봐오는 시선. 그 한 없이 조심스러움에 보는 것만으로도 맞았을 아이가 예상이 간다.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을 달구고 기름을 둘렀다. 뒤에서 멀뚱거리는 시선이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저 익숙하지 않은 듯 꿈쩍거리는 움직임만 계속 보일 뿐이다. 아이의 발이 떠오른다. 이 살얼음 어는 겨울에 여린 아이의 갈라지고 까진 피부와 터져나온 피로 얼룩진 발바닥이-
치이익-
달군 프라이팬 위로 붙는 계란이 금세 익으며 소리를 지른다. 천천히 대충 잡은 나무주걱으로 익은 부위부터 안으로 안으로 접어갔다. 접시 위에 올린 달걀말이를 말끄러미 보는 아이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린다. 데워진 물을 반 그릇 푼 후 그 안에 찬 밥을 꾹꾹 말았다. 찬기와 섞인 뜨거운 물이 금방 뜻뜨미지근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 앉은뱅이 상 위에 물에 만 밥과 계란말이, 김치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따뜻하게 달궈진 물이 든 냄비를 올려 아이 앞으로 가져갔다.
“....”
눈을 똥그라니 뜨는 모습이 귀여웠으나 동시에 홀쭉하게 들어간 젖살 없는 볼이 눈에 박힌다. 아이에게 향하도록 수저와 젓가락을 놔두고 태원은 냄비 안에 제일 깨끗한 수건을 가져와 적셨다. 아직도 아이의 발은 눈에 젖어 피와 흙이 엉켜있다.
“....”
천천히 조심히 아이를 자신의 발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 접촉한 피부를 통해 움칠거리는 아이가 느껴진다. 따뜻한 물에 적셔 꽉 짠 수건으로 조심히 발에 엉킨 피와 흙, 녹은 눈을 닦아낸다. 아이는 여전히 똥그래진 눈으로 태원을 본다.
저 밖의 얼어붙은 고드름같이 있던 아이는 햇볕에 차츰 녹는 고드름마냥 몸에 긴장을 풀며 태원이 하는 바를 지켜보았다. 따뜻한 수건이 이질적이다. 굳은 살 박힌 손도 이질적이다. 눈 앞에 있는 상도 이질적이다. 아이에게, 어린 리해랑에게 모든 것이 이질적인 곳이었다.
남자가 천천히 수건을 더러워진 물이 든 냄비에 넣어 들고, 해랑이 떨어뜨린 자신의 군복 상의를 추슬러 한 팔에 걸치며 일어나 치우러갔을 때에야 해랑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조심히 조심히 무척이나 조심스레 수저로 노랗고 조금은 식은 윤기 흐르는 달걀말이를 톡톡- 두드리다 아주 조금 잘라 입으로 옮겼다.
“...!!!”
커지는 눈 안에 아직 오지 않은 봄의 경악이 차오른다.
말랑한 줄만 알았던 계란은 입 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져서 입 안 가득 달걀의 고소함과 감칠맛을 그리고 달달함을 안겼다.
그리고 해랑이 물에 만 밥 한 그릇과 달걀말이 2개를 다 해치울 때까지도 태원은 단 하나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날 어린 해랑에게 빠른 봄이 찾아왔다.]
태원은 그 차가운 날의 봄을 기억했다. 아.. 어쩐지- 작은 태원이 안방에서 미드라도 관전하는 시청자마냥 심드렁하게 못 박듯이 말한다. 리해랑이한테 좀 무르더라, 나. 곤란한데... 태원이 한숨같이 작은 태원에게 대답하듯이 중얼거렸다. 눈앞에 계란말이처럼 노랗게 노랗게 물든 머리가 그 때와 같이 귀엽지는 않은데 먹는 속도는 여전하다.
태원은 문득, 입을 열었다.
“-기타 쳐봐.”
“....”
땡그랑-하는 젓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입에 넣은 계란말이는 무사히 사수한 해랑이 눈가를 바르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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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원은 담배가 피고 싶어졌습니다.
“...야.”
“..네.”
“포기해라. 그럼 편해.”
“커..커흡!”
“그냥 보컬로 가라. 넌 그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해랑은 그 날 이불 위에서 발차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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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은 햇볕이 무척이나 따사라로운 오후... 달동네 무적 할매, 석이 슈퍼 할머니께서는 오늘... 태원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거- 아랫집 아가 있는디, 오늘 좀 봐줬음 써- 거거, 동구랑 석이 슈퍼에서 좀 부탁혀.’
그 아라는게.....
“뿌아-”
애기이였으면말을해줬어야하잖습니까,아주머니. 소리 없는 태원의 멘탈바스라지는 소리였다. 태원의 손을 잡은 막 돌이 다 지나가는 애기가 태원의 목티의 끝자락을 잡아 늘린다. 다행인지 아닌지 아무래도 낯가림이 심히 없는 애기 같았다. 조심스레 애기를 추슬러 안았다. 그 폼이 무척이나 어설프다.
“......”
그에 반해 동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류환은 점점 심화해가며 나날이 발달해가는 멘붕에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대..대좌가- 초..총교관 동지가- 애..애기.. 애기.... 천천히 애기에게 시선이 맞춰지자 애기의 밝은 웃음이 들려온다. 헐. 류환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행동규칙을 외우며 부여잡았다.
“초..총교관 동지, 내래가 안고 있갔습네다.”
“...됐다. 넌 니 역할이나 해라.”
한숨을 내쉬며 손을 팔락이는 태원에 류환은 다시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대좌 동지 품에 애기가.. 애기가..... 물론, 좀 많이 어색한 폼이었지만 류환은 태원의 품에 애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울지않는 애도 그렇지만...
“꺄- 아앙-”
“...아-”
“........”
물었다. 류환은 멍하니 태원의 손가락을 물고 빠는 아이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찬가지로 딱딱히 굳은 태원의 애기를 잡고 있던 손이 느슨하게 풀렸다. 그러자 그 순간 버둥거리는 애기에 태원의 큼직한 손에서 애기의 몸이 설핏- 붕 뜨는 게 류환의 눈에 보였다.
“엇-”
류환이 급히 바닥에 몸을 눕혀 애기를 잡아채려했다. 그러나 어디서 그리 힘이 나는지 태원의 손가락을 쥐고 둥둥 애기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허공에 떠있었다.
“허-”
“..하....”
거, 고조 오성조 조장 간 떨어지게 하는 애기로구만, 기래? 류환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조심히 애기를 받아 태원의 무릎에 올렸다. 아까까지는 그저 태원의 품에 애기가 있다는 것에 정신을 차리지 못 했으나 찬찬히 차려진 정신에 난생 처음 보는 애기를 살필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동생도 없었고, 그의 근처에 사는 이 중에 애를 낳으려, 입을 하나 더 늘리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 태원의 무릎에서 꾸물거리는 애기가 류환의 눈에 마냥 신기했다.
고사리같은 자그마한 손, 말똥말똥한 말간 눈, 자그마한 말랑한 발, 보송한 솜털 있는 젖살, 토실토실한 팔 다리와 몸통... 신기하다. 류환은 그렇게 빤-히 애기를 쳐다보았다. 애기들은 다 저런 걸까- 그리 생각하는 류환의 품에 대뜸 애기가 엉금엉금 평상을 기어 다가온다.
“어...어어?!??”
“...뭐하나? 너한테 가잖아.”
당황하는 류환을 보며 태원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 냉철하다는 오성조 3대 조장을 기겁시키는게.... 아장아장 기어가는 팔다리가 참으로 앙증맞은 얇은 결의 머리카락의 애기를 보며 태원은 조심히 입을 가렸다. 당황하는 녹색 바보와 그런 녹색이 신기한지 엉금 기어가는 아기의 모습이 참으로... 큽- 작은 태원이 바닥에 얼굴을 묻고 배를 움켜쥐며 부들거린다.
“우...웃지 마시고, 어떻게 좀.... 해주십쇼, 대좌 동지!!”
입을 가리고 있는 태원을 봤는지 류환이 벌게진 얼굴로 우왕좌왕하며 소리친다. 태원은 한 손을 들어 흔들고는 천천히 입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니가.. 안아 주겠다며? 큽...”
“아...으-”
류환의 눈이 혼돈으로 가득찬다. 뭐.. 뭐 어떻게 안네? 류환은 지금까지 동무들이라던가 안았던 것을 떠올렸다. 아..앙돼- 그건 목을 꺽던거고! 그건 팔을 돌릴려는 준비자세고! 아..앙돼! 조..조금 있으면 가까워진다! 으..아- 패닉에 빠진 오성조장의 모습은 꽤나 휘귀하다고 태원은 생각하며 빤- 어떻게 할지 바라보았다. 아- 다 다가갔다.
“바아-!”
턱-하고 류환의 다리 위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아기의 오동통한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어..어어어?”
“음....”
천천히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나는 모습에 이번에는 태원 또한 당황한다. 그의 옛 옛적에 갓난쟁이를 보았을지 모르나 지금의 그의 인생에 애기는 보기 힘들었다. 죽은 시체면 몰라도-
“어..으아-”
“거... 좀 안아주라. 힘들어보인다.”
“어..어어? 네..네!”
어정쩡하게 얼어서 평상 위에 힘들게 일어선 애기를 류환이 두 손을 바들거리며 천천히 잡았다. 애기의 옹알거림이 찰지게 들려온다. 조금만 있으면 호흡곤란이라도 올 것 같은 류환을 보며 작은 태원이 훈훈한 눈으로 중얼거린다. 처음이구나? 류환은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잡아야하는지 머리가 엉켜들어갔다. 어느.. 어느 정도로 들어야하지? 손에 잡히는 연약한 생명체가 가히 류환은 두려웠다.
그리고-
“끙아-”
“아-”
“..에?”
애기의 엉덩이 쪽 바지가 밑으로 축 쳐졌다.
“...쌌다.”
“....에? 에에에?!??!??”
원류환, 24세. 자랑스러운 인민공화국의 혁명전사. 오늘... 혁명 하나를 목도한 것 같습네다.
아기의 기저귀를 어색히 설명서를 보며 갈아주는 태원의 등을 보며... 류환은 자신의 손에 들린 똥 싼 기저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 좀 버려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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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과 원류환 사이에 아기가 곤히 배에 이불 하나를 덮고 자고 있다. 류환은 슈퍼 할매가 태원과 먹으라며 냉장고에 넣어놨던 쌍쌍바를 꺼내 반으로 똭- 쪼갰.. 쪼갰.. 아, 긴장했네? 내래...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다 한 쪽에서 동강난 쌍쌍바를 보며 태원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아.. 오늘 오성조장 무너지는 모습 많이 보네. 큽- 류환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마냥 붉어진다. 웃지마시오, 대좌 동지. 좀 더 많이 붙은 부분이 자연스레 태원에게 건네진다. 그 모습에 태원은 조용히 받아들었다.
조용히 뚜렷한 모양의 입술 사이로 사라지는 쌍쌍바를 보고 나서야 류환의 입 안으로 쌍쌍바가 들어간다. 거- 예의하나는 바르군. 오성조 특징이냐-하며 태원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입 안으로 들어가는 갈색의 아이스크림은 실은 이게 두 번째였다.
[“거- 총각! 최 선상 도와주는 총각!”
“.....”
태원이 멈칫-하고 뒤돌아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슈퍼 할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한다. 멍하니- 누군가 자신을 부를 줄은 몰랐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던 태원은 느릿하게 붕대로 가린 오른 눈을 긁적였다. 아- 간지러워...
“지금 할 일 없지?”
“아..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지금 동구 갸가- 배달나가서 그런디 나 대신 슈퍼 좀 봐줘.”
순간 태풍같이 몰아친 할매가 움찔거리는 태원의 손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어주고는 쏜살같이 언덕을 내달리듯이 내려갔다. 한 차례 몰아친 폭풍에 태원이 물기에 축축해지는 손을 느끼며 눈을 느릿하게 꿈뻑였다. 가히... 원류환이를 잡는 아지메의 기상다웠다. 괜히 간첩 3명을 부려먹는 패기가 아니었다.
“.......”
태원은 자신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아.... 자두 맛. 아지메, 쫌. 한숨을 쉬며 봉지를 천천히 깠다. 불그스름한 색의 아이스크림 투명한 재질 안에 갇혀있다.
“.........”
똑-하고 꼭다리를 따 뜯은 포장지 위에 올려놓고 입에 한 번 물었다. 아- 차가워. 태원은 맹-하니 입에 문 아이스크림을 이로 깬 후 입 안으로 빨아먹었다. 어느 새 저 언덕에서 입에 누가 물려주었는지 알 수 없는 아이스크림.. 무려, 자신과 색만 틀린 것을 입에 문 동구의 모습을 한 류환이 떵-하니 굳어있다.
“.......”
“.......”
그러더니 천천히 빈 박스를 가지고 내려와 평상 한 쪽에 내려놓으며... 야, 왜 다소곳이 내 옆에 앉는건데?! 태원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류환을 보았다. 류환은 말없이 옆에 앉아서 입에 물린 쭈쭈바를 먹었다.
‘......오성조는 다소곳한 예의가 종특이냐.’
태원은 미묘하게 떠오르는 해진의 모습에 입에 물린 쭈쭈바를 빼지도 못 한 채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미묘하게 각 조마다 그 특징이 있었더랬다. 웃기는 일이야. 태원은 괴물을 키우는 곳에 이 무슨 인간적인 모습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에 새파란 하늘을 보았다. 오늘이 몇 월이던가.. 그래, 10월의 마지막 주던가..... 천천히 감은 눈가에 따가운 햇살이 내비친다. 아-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툭-하고 막대에서 갈색의 덩어리가 무릎 위로 떨어진다. 눈을 떠 내려다 본... 야, 너 뭐하냐.
“....원류환이. 애 뭐하냐...”
“......아-”
무릎에 떨어진 걸 무릎으로 엉금엉금 애기가 기어와 손으로 잡는다. 어.. 화들짝 무릎에 있는 덩어리를 땅으로 쳐버리자 이내-
“으..으..으아아아앙!!!”
“...아.. 그.. 애를 울리시면 어쩝네까!”
“......”
원류환의 비명섞인 소리에도 태원은 쩍-하니 굳어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이..이기 어떻게 해야하네? 비명섞인 소리가 태원의 안을 울렸다. 막대밖에 안 남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옆에 던져버리고는 조심히 우는 아이를 들어올렸다. 안 그친다. 태원이 원류환에게 건넨다. 류환이 둥기둥기? 언제인가 보았던 치웅이와 성민이를 이발소 박씨가 해주던 것을 따라해보았다. 아- 더 운다. 딱-!
“너무 높이 올렸어!”
“아-!”
“으아아아앙!! 히끅! 우웨에에엑-”
“악! 토 한다!”
우왕좌왕 이리저리 허둥지둥- 그 모습을 보던 애기가 헤-하고 웃는다. 그 딸꾹질 섞인 웃음소리에 걸레를 가져오고 애기 엄마가 맡기고 갔다는 분유와 우유병을 잡고 씨름하던 태원과 류환이 멈칫 굳어 끼긱-거리는 머리로 그네들을 혼란케한 괘씸한 남조선의 애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꺄아- 꺄꺄! 히끅-! 꺄아-!“
박수까지 치며 좋단다. 태원과 류환의 얼굴이 허탈해져갔다.
그래.. 그러니까 그 애기가-
“...헐.”
무릎으로 걷다 어느 순간 평상 위에 널브러진 상자를 잡고 일어나는 것을 보기 전에는... 태원도 류환도 한 동안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상자를 부여잡고 자신들에게 걷는 애기를 보며 얼어있었다.
“악! 넘어진다!”
“어억!”
떨어지는 애기는 여직 웃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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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뭐네?”
해랑은 눈을 부볐다.
5번째 오디션에 탈락해오는 길이었다. 아, 역시 대좌님 말마따나 보컬로 해봐야하는 기네... 내래 가오가 있지... 그런 생각으로 올라오던 길... 석이 슈퍼 앞 평상 위...
“이기 뭐네?”
“뭐하십네까, 해랑 조...장.....”
평온한 오후의 한 자락. 동구의 초록색 추리닝 바지를 빌려 입은 태원과 류환이 나란히 어깨를 마주대고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다. 그네들의 무릎 위에 위대하신 아기님이 다리 한 짝, 팔 한 짝을 올린 채 주무시고 계시다.
아직은 평온한 오후.
아직 서해 또한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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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이 밤참으로 라면을 먹은 류환의 뒤통수를 찰지게 발로 찬 그 다음 주말 날의 일이다. 언제나처럼 해진과 함께 평일에 먹을 반찬 손질을 하며 멀뚱히 TV를 보았다. TV 안은 여전히 아직 평화로웠다. 그러나 태원은 이 평화로움이 어쩐지 점점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하고 깨닫고 말았다. 이제 곧-이구나.하고 말이다. 태원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자신의 눈과 마주친 해진의 푸르스름한 눈이 곱게 휜다. 거 왠만한 여자 뒤로 넘어가게 웃는군. 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웃음에 태원은 툭툭-하고 해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래, 오늘은 외식하자.
그러나, 생각해보니 돈이 없었다.
‘....최진우 안 오나.’
그의 통장에 빨대를 꼿고 있는 태원은 왠 일로 진우가 급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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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해진은 궁금했다. 대좌께서 쓰시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식비와 집세, 수도세 등을 생각하면 그들이 받는 공작금만으로도 부족할만한 수치였다. 해진은 흘끔 오늘도 위층의 난간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해랑을 보며 생각했다. 거, 쌤통이구만, 기래. 태원은 한 숨을 쉬며 반쯤 헤집어놓은 음식을 봤다. 아니, 먹을 거면 좀 얌전히 먹던가.... 묵묵히 설거지를 하고 뒤처리를 하는 류환의 등이 그리 이쁠수가 없다. 태원은 류환의 머리를 토닥였다.
“...착하다.”
“....?!??!??”
류환은 요즘 들어 적응되어가던 멘탈이 다시금 바스라짐을 겪었다. 류환은 아득한 옛적 자신의 머리를 딱 한 번 토닥였던 태원을 떠올렸다. 아- 그 때 얼굴이 발그레졌었제. 지금도 발갛게 변했다.
해랑은 음식을 험악하게 먹은 대가로 여전히 난간에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어렸을 적이 떠오르는구만, 기래- 해랑은 훈훈하게 그 옛날 태원의 책에 낙서했을(글공부한다고 했던 것이지만-) 때와 라이터가지고 놀다가(태원을 따라해 보고 싶었던 것이지만-) 불 싸지를 뻔 했을 때, 그리고 몰래 담배를 피다 걸렸을 적 등등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태원은 때리지 않고 이렇게 거꾸로 매달아놓거나...
“우웁-”
“리해진이 그만 흔들어라.”
“네.”
거꾸로 탈탈 흔들었었지. 근데, 왜 니가 흔드네, 리해진이.... 해랑은 벌받는 중에도 불만을 느꼈다. 아... 좀 오래 매달려있었더니 슬슬 위액이 역류하는 느낌이다. 천천히 묶인 발을 풀고 풀짝- 바닥에 내려앉은 해랑은 한 동안 해파리마냥 뻗어있었다. 그런 그의 위에....
“이야- 기래, 탄탄함 한 번 끝내는 쿠션이구만, 기래?”
어느 새 창문을 따고 침투해온 진우가 앉아있었다. 오늘만큼 태원이 묵인해주겠다는 듯이 얼굴을 돌렸다. 그에 신나라 우웁-거리며 임신한 임산부마냥 헛구역질을 해대는 해랑의 등을 굴러다닌다. 이야- 내래 조장을 이리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올지는 몰랐어- 싱나! 해랑이 바닥을 긁으며 이를 북북 갈았다. 그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류환이 5446부대 망신 다시킨다 혀를 찬다. 저런 종간나.... 내래 쪽시려서 얼굴을 못 들갔어, 아주.
“아- 쫌!! 그만 내리라!!”
“뭐래는 기네? 내래... 쿠션을 밟고 있는기야-”
“악! 내 허리!!!”
흥헹휑↗하는 콧소리까지 내던 진우에 결국 부글거리던 해랑이 벌떡 일어나 캬악-거린다. 낄낄거리던 진우가 도망을 시도한다. 거- 좁은 집 안에서 뛰지 마. 태원의 인상 찌푸린 말에 류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잊는다. 음식에 먼지 들어간다, 해랑. 왜 내래만!하는 억울한 눈초리가 오지만 류환도 태원도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
해진은 그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평온하다. 굉장히 평온하다. 해진의 입에 말끄러미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 새 류환과 식재료를 다듬으며 뭐 먹고 싶냐 묻는 태원이나 애 벤 에미나이마냥 우욱-거리며 좌절하는 해랑이나 그런 해랑 위에서 신명나게 즐거워하는 진우나 평화롭기 그지없다.
해진의 머릿속에 점점 진우의 그 너무나도 깨끗했던 정보에 대한 의문도 태원이 주었던 그 서류 봉투에 대한 생각도 점점 이 일상에 파묻힌다.
이 일상이 소중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달 돈 들어갔습네까?”
“...아-”
“?”
식단을 적는 태원의 손이 멈칫했다. 3명의 간첩과 어느 새 집 안에까지 도청기를 설치한 이중간첩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저건 또 뭔 소리네? 해랑이 눈으로 류환에게 물어보았다. 류환은 어깨를 으쓱여 알리가-하는 제스쳐를 취해보였다. 류환의 눈이 해진에게 향했다. 해진 또한 모르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들어왔네, 200.”
“....?!???”
“..2...200?”
“이야- 뭘 그리 놀라네? 아직 남조선 적응 덜 됐구만, 기래?”
3간첩의 눈이 휙-하고 진우에게 향했다. 진우가 낄낄거리며 하회탈 같은 얼굴을 망가트리며 그네들을 보았다. 아... 얘네들 겁나 귀엽네. 꼭 분담해서 그를 닮은 것 같잖아? 태원은 그 웃음에 한 숨을 쉬었다. 재미 들렸군. 정답이다.
“내래 한 달 수입이 500이 넘는구만, 기래. 몰랐네? 내 역할이 좀 쩔어.”
"그... 그 5..5.500이란게... 설마...“
“기래-”
하회탈의 얼굴을 천천히 진지하게 만든 진우가 얇은 실눈을 날카롭게 뜨며 천천히 손가락을 피며 말했다. 꿀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작은 태원도 속으로 침을 삼켰다. 그러나 현실의 태원은 중얼거렸다. 애들 그만 놀려라. 묵묵히 그의 눈은 적고 있는 식단을 보았다. 태원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진우의 진중한 음성이 들렸다. 부러 낮게 깐 목소리다.
“500만원인기야.”
헉-하는 숨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린다. 태원은 문득 어디선가 이쪽을 도청 중일 것인 수혁을 떠올렸다. 거.... 그 아새끼가 애네들 어떻게 생각할까 갑자기 씁쓸해진다. 마치, 지금 자신의 눈을 한 손으로 가리며 한 숨을 푹- 내쉴 그 모습이 연상되는 것 같았다.
TV에서 방영하는 시트콤? 필요없다. 지금 듣고 있는게 실시간 시트콤이다.
“어때... 내래가 좀.. 위대해보이지 않네?”
류환의 머릿속에는 사탕통 하나가 둥둥 떠올랐다. 해진의 머릿속에는 [대좌께서 쓰시는 돈의 출처=진우=발닦개]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해랑의 머릿속에는... 그냥 돈이 날라다녔다.
“그러면 뭐해, 공금인데.”
“...켁-”
진우가 방해받은 얼굴을 하며 태원을 바라보았다. 그에 3간첩이 태원을 보았다. 태원은 그들을 잠시 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좋아, 정했다. 작은 태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표를 보냈다. 작은 태원 안의 태원들이 만장일치를 했다. 어차피 내 돈 아니다. 작은 태원 안의 무신경함을 담당하는 태원이 한 말이었다.
“오늘은... 외식이다.”
“...네?”
“옷 입어라. 밖에서 먹자.”
검은 목티 위에 외투를 걸치며 태원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저 놈 잡아라.”
3명의 간첩은 빠른 속도로 창문에 손을 얹은 진우를 진압했다. 태원은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감탄했다.
‘거.. 본 적 없는 속도에 팀워크로군.’
가장 빠른 해진의 태클에 넘어지는 진우를 해랑이 낚아채어 잡아 던지자 류환이 그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기술로 포박했다. 환상의 궁합이다.
3명의 간첩의 눈이 참으로 반짝이며 빛난다. 꼭 별처럼 빛나는 눈의 그네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외식이 뭐네? 살아있기를 참 잘 했어. 3명의 간첩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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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 5분 받겠습니다. 따라오세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뭐하냐, 니들.”
태원의 차를 타고(생각보다 부드러운 주행이라 3명은 무척이나 놀랐다. 지프는 그리 거칠게 몰면서!! 해랑의 통렬한 외침이었다.) 도착한 곳은 서울에서 꽤 떨어진 도시의 한 건물이었다. 눈물을 머금은 그들을 무시하고 내리는 태원을 따라 내린 3명은 놀랐다. 여기는 어디네?!?? 그들이 걸어가는 곳이 별천지인 것 같았다. 심지어 밖을 자주 드나들 수 있었던 해랑까지도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보인 곳 전체가 ‘마드리드’라는 식당이라니.. 무슨 정부 고위직에서나 볼 법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이내 북적한 사람들과 함께 왔다갔다하는 웨이트리스들과 웨이터의 모습,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의 모습, 시끌하게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그네들의 모습에 눈을 껌뻑여야 했다. 남조선이 돈이 많다더니.. 정말 많구만, 기래.... 류환은 어쩐지 속이 울렁였다. 그런 류환의 어깨에 턱-하고 손 하나가 올라왔다. 돌아본 류환의 눈에 그 옅은 적갈색의 깊은 눈이 마주쳤다. 살짝- 움칫한 류환은 태원의 고갯짓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
“.........일단, 먹자.”
눈을 반짝이는 난생 처음보는 ‘정말’ 어린애같은 모습의 해진이 있었다. 해랑 또한 그리 다른 모습은 아니기에 류환은 허탈한 웃음이 어쩐지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고뵈니... 리해진이 저거 18이었지? 그런 그들의 뒤로 서있던 서수혁이 슬쩍 안경을 위로 올렸다. 그의 심경은 꽤나 복잡했다.
“......”
[3명의 간첩에 제압당한 진우의 뒷주머니에서 유유히 신용카드를 뺀 태원이 방긋이 웃어주며 말했다.
“내다 버려라.”
“넷, 총교관 동지!”
오랜만에 듣는군. 하고 태원은 질질 끌려가며 허망한 눈을 하는 진우를 보며 카드를 흔들었다. 쌤통이다, 이 자식. 태원은 십년 묵은 스트레스 암 덩어리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저런 암 같은 놈. 그러다 문득, 태원은 입을 열었다.
“너도 와라, 서수혁이.”
그 깊고 낮은 저음은 정확히 수혁의 귀에 박혀 들어갔다.
오소소- 돋는 소름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린 수혁은 눈가를 꿈틀 거렸다. 알고 있을 거라 짐작을 어렴풋이 했었다. 그러나... 그게 확신이 되자 수혁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묵인해준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알려주는 것인가- 수혁은 한 숨을 쉬며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도무지 ‘남’으로 온 태원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물론, 북에서도 그랬지만... 수혁은 마이를 펄럭이며 몸에 걸치며 자리를 일어났다.
오늘은 아무래도 가봐야겠군. 가는 그의 등을 아무도 잡지 않았다. 그는 벌써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이 일에 투자했음으로-]
“...서수혁이.”
“....네.”
“...씨발. 저것들 좀 니가 챙겨봐.”
음식 앞에서 발발거리며 다니는 간첩 2명과 어쩐지 좀 우왕좌왕하는 간첩 1명에 태원이 눈을 가렸다. 서수혁은 어쩐지 자신이 낚인 느낌이 들었다.
니들 뷔페 처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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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류환이가 정상인이라 다행이야.하고 서수혁과 김태원은 생각했다. 경악과 초롱이는 눈으로 돌아다니는 어른이 리해랑을 서수혁 혼자만 맞는 것은... 무리, 역시 무리였었다. 징징거리며 추가로 온 최진우가 아니었다면, 그 날 뷔페는 망했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곤히 자는 리해진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무한 흡입을 하던 그네들을 떠올렸다. 너 배신. 진심 배신, 서수혁이. 그 간첩 3명과 다를지 않을 속도와 양을 먹던 서수혁을 떠올린 태원이 낯을 어둡게 만들었다. 뷔페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무섭게 먹을 줄은 모른 태원의 패착이기도 했다. 어쩐지 그 뷔페에는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아. 작은 태원이 어딘가 하얀 방에 갇힌 언니의 얼굴을 해보인다. 요리사가 바로 해 주는 음식에 놀라고, 처음 보는 음식들에 놀라고, 입에 넣으면서 놀라고, 무한 리필이라는 것에 놀라고, 가격에 놀라고.. 참, 놀랄게 많았어.... 그렇지? 태원은 벽에 등을 기대며 한숨 같은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옆에 누운 해진이 고른 숨을 쉰다.
“.......”
그가 감은 눈 아래로 여러 가지 모습이 보인다.
얼린 망고스틴을 보며 눈을 땡그라니 뜨며 이건 어떻게 먹느냐 고민하는 리해진이, 한 접시에 기예라도 하듯 가득가득 탑을 쌓아 담아오고 몇 번이고 요리사 앞에 가 줄을 서는 리해랑이, 매너 좋게도 자신에게 먼저 건네고 저 북에 있을 어머니에게도 드시게 하고 싶다 중얼거리면서 입에 넣기 주저하던 원류환이, 리해랑이의 머리를 결국 쥐어박으며 리해진이에게 먹는 법을 알려주고 마는 서수혁이, 실실 쪼개며 입에 넣기 주저하는 원류환이의 입에 친근히 케잌 한 덩어리를 처넣어주고 어디서 맥주까지 들고 나타난 최진우-
마지막으로-
“........”
태원이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메시지가 와 있다. 잠시 감았던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 곳에는 누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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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혁은 속이 거북했다. 왜 자신은 이곳에 있는 걸까? 서수혁은 자신의 주머니에 들린 쪽지를 펼치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잘 피지도 않던 담배의 독한 연기를 목구멍을 넘는다.
그러고 보니 살인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간접흡연이라지.... 후-하고 내뱉는 연기가 참으로 독하기 짝이 없어 수혁은 눈가를 찌푸렸다. 딱히, 이곳에 사적인 감정으로 온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야 했다.
며칠 전의 뷔페가 아스라한 옛날의 기억마냥 잿빛으로 담배연기처럼 물든다. 그 날에 받은 쪽지를 손에서 우그러뜨리며 막 피기 시작한 담배를 땅에 떨어뜨려 구둣발로 비벼 끄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굳은 살 잔뜩 베긴 손 때문에 어쩐지 얼굴이 아린 것 같았다.
“후우....”
내린 손 아래로 탁 트인 산 아래의 전경이 보인다. 당신은 왜 이런 곳에서 자신을 보자고 한 걸까..... 수혁은 알지 못 한다.
“서수혁이.”
“-!!”
기척도 없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수혁은 움칫- 몸이 긴장을 하는 것을 느꼈다. 뭘까- 혹, 자신을 이용했던 것 이였던 걸까? 역시 그런걸까? 그러면 이제 그 필요성이 다한 걸까? 서수혁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들어맞기에 수혁은 마음 한 구석 피어오르는 그에 따른 의구심과 함께 아릿한 심장의 통증을 묻는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수혁에게 태원의 무감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만. 그대로 있으라.”
“.......”
수혁은 그 목소리에 기묘한 기시감과도 같은 느낌을 느꼈다. 어디서... 어디서 느꼈을까,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기시감인가- 수혁의 머릿속을 차게 만든 이것은 어디서 오는걸까-
“내래- 위에서 오라는군, 기래.”
“......”
수혁의 머릿속은 뒤엉켜 태원의 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다. 그의 머릿속을 장악하는 것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이었다. 마치... 차근히 목을 졸라오는 이 기시감은 어디서부터?
“...아마도 곧 일이 터지겠지.”
“.......”
태원은 숲의 그늘 속에서 말없는 수혁을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그 어둠 속에 휩싸인 그늘 아래, 숲의 어둠 아래에서, 그 한 발 자국만 디디면 빛이 있는 그 하늘 아래 무슨 생각으로 검은 수트 자락의 뒷모습을 보았을까.
“내래는....”
“......”
그 억양과 말투를 듣고 수혁은 언뜻- 깨달았다. 이 사람 자신한테 이북의 억양을 쓰고 있다. 어째서?
“조국의 개라서...”
“......”
어째서? 지금까지 심지어 북에 있을 때에도 자신에게 쓰지 않던 것을?
“해줄 수 없을기야. 그러니-”
“......”
왜 지금와서 쓰는 거지? 북에 있을 때 쓰지도 않던 그 이북의 언어를... 수혁의 미간이 의문에 기시감도 묻히고 찌푸려졌다.
“-간나들 좀 부탁한다.”
“.....뭐?”
그 작고 낮게, 그리고 한 없이 진중하게 들린 말에 뇌가 바로 인식한 후 뒤로 몸을 돌렸을 적에...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어지러이 나있는 풀을 내리누르는 서류 봉투 하나가 덜렁 있었을 뿐이다.
“........”
수혁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지지 못 한 채 그 있던 자리 위의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천천히 연 봉투 안에는-
“아-”
툭-하고 떨어지는 수혁의 구둣발 아래 하얀 종이가 나풀거린다.
그 종이 위에 클립으로 껴진 사진이 두어장.
그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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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해진은 눈을 깜빡였다. 어디가신거지? 둘러본 그 집 안에 태원이 없었다. 아침이면 아랫 부엌에서 밥을 하고 계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기묘한 불안감이 해진의 몸을 엄습한다. 그것은 마치, 그가 집에 있었을 적 어느 날 광산에 끌려가는 아비에게서 느꼈던 그 불안감이었다.
“....총교관 동지?”
조용히 부르는 그 음성이 어쩐지 그 나이 대에 어울리게 가냘프다. 푸르스름한 새벽. 그와 같은 색을 지닌 눈동자가 흔들렸다. 빠르게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대좌 동지?”
떨리는 음성이 조금 커졌다. 아- 혼날텐데... 벽이 얇다 부를 때 좀 소리 죽이라 말하던 그 모습이 아직 선하다. 난간을 잡고 훌쩍 아래로 뛰어내려 뒤돈다. 그 뒤에 있는 것은 따뜻하게 차려진 상의 모습.
“.........”
천천히 다가선 그 위에 쪽지 하나가 올려있다.
간단하게 쓰인 한 문장.
[올라간다.]
아- 해진의 눈이 껌뻑였다. 아-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 한 말이 웽웽하게 안에서 울린다. 몰까- 이 기분은... 해진은 그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눈가를 찌푸렸다. 자리에 앉아 만지작 만지작 쪽지를 매만진다. 천천히 든 젓가락이 그 특유의 말랑한 계란말이를 자른다. 아직 안에서부터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입에 담기는 음식이 맛나다.
“......아-”
이제야 터져나오는 음성이 메마르다. 어제... 어제까지만 해도 서수혁이라는 백두조 3대 조장까지 와 먹던 야참이 이것이었다. 천천히 내려놓은 젓가락의 소리가 유난히 크다.
“........”
다시 내려다 본 쪽지..
“...?”
꺼끌한 표면에 눈가를 찌푸린다. 근처의 연필을 급히 찾는다.
“.......”
덧칠한 쪽지 위로 영문과 숫자가 뒤섞여있다.
[서류. 리해랑. 오늘.]
눈을 껌뻑인 해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가져온 짐이 정리된 천으로 된 수납장이 보인다. 그 안에 있을 서류봉투 하나가 떠오른다.
‘해랑에게 주라우. 그럼 될 거야.’
“......”
어쩐지 그곳에 자신의 이 감정에 대한 답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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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들개라 생각하지 않는다.(부제: 들개는 부모가 없다.)
“대좌 동지-”
“뭐네?”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되고 싶습네까?”
진우의 질문이었다.
태원은 그 얼굴이 보이지 않게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얼굴일까? 진우는 하회탈 같은 얼굴로 싱글거리며 생각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이오? 흘끔- 얇게 뜬 안경 아래의 눈이 안경도 모자도 쓰지 않은 이의 뒷모습을 담았다.
“글세.... 뭘까-”
감각 없는 목소리는 공기 중을 유영하듯 흩으러진다. 낮고 진중한 그 목소리가 그를 닮았다. 창문에 빛인 자신의 눈에 초점을 맞춘 태원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기억은 과거를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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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추운 곳이었다. 아득히 옛적의 그 곳은 그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추웠다. 사람들의 눈은 자신을 기괴한 무언가를 보는 듯이 보았었다. 자신은 그것이 정상인지 알았다.
“야- 이 괴물아!”
휙-하고 날라오는 돌덩이를 잽싸게 피하며 태원은 무뚝뚝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에 어린 아해가 힉-하는 소리를 내며 도망친다. 그리 도망치고 오줌지릴 것이면 왜 자신을 불렀단 말인가. 태원은 한심함에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품에 안은 오늘 몰래 파온 칡뿌리를 안아들었다. 그런 그는 그 마을에서 유명한 ‘괴물’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벌써부터 생존해나간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무섭게 크고 있다.
아이의 지식이, 아이의 행동이, 아이의 눈빛이 어른들조차 겁에 질리게 했다. 그네들과는 다른 그것이 그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저건 무엇인가- 그네들이 알지 못 하는 것은 언제나 공포로 먼저 다가온다.
아이가 돌아온 집에 어미가 있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이 있다. 아직 젓조차 때지 못한 갓난이도 있다. 자신은 손조차 대지 못 했지만, 그 갓난이를 안고 계신 오마니는 몸이 약하셔서 아이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태원은 그런 아이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보다 가족을 먼저 걱정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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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가 뭐라고 생각하네?”
“..읭?”
갑자기 뭔 말임네까?하는 얼굴로 진우가 태원을 바라보았다. 태원은 여전히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으며 턱을 긁적였다. 저 양반이 뭔 시답잖은 질문을 하네?
“보신탕?”
“.....”
조용히 뻑-하고 날라 온 태클이 진우의 옆구리를 찌른다. 겁나 아프다. 진우가 으-하는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옆으로 빼며 핸들을 돌린다. 진짜 아프다. 그런 진우는 신경도 쓰지않은 채 눈을 감았던 태원이 천천히 창밖을 스쳐지나가며 얼핏 보인 개를 떠올렸다.
북한산에는 많은 개가 버려진다 한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버려진 많은 개들이 들개가 되겠지. 그런 개들에게 부모가 있을까?
하-하는 비웃음 소리가 태원의 입 밖으로 나온다. 적어도 북한에서의 들개들은 언제나 굶주려있다. 어미고 뭐고 없을 정도로 굶주린 들개들은 언제나 먹을 것을 찾고 깡마른 몸으로 침을 흘리며 돌아다닌다. 그것을 몽둥이로 때려잡아 밥을 주고 보신탕으로 만든다.
“.....”
그런 그네들에게 부모가 있던? 태원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는 들개구만, 기래.”
“...읭?”
한숨과 같은 낮은 중얼거림에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래도 어제 정말 뭘 잘 못 먹은 것 같다, 저 양반. 진우가 태원을 힐끔 보며 말한다.
“거- 기럼, 광견병 주사 맞춰야하는 거 아닙네까?”
“.......”
태원이 그제야 찌푸린 얼굴로 진우를 바라본다.
진우는 옆구리에 태클을 한 방 더 먹었다.
원류환에게는 오마니가 있다.
리해랑에게도 돌아갔으나 오마니가 있다.
리해진에게는 오마니 외에도 동생이 둘 있다.
그들은 들개가 될 수 없다.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