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위/조아라]대좌님! 우리 대좌님!-1
조아라에서 연재한 대좌님 우리 대좌님입니다.
본 작가 맞습니다, 네.
prologue
“......”
꾸깃-하고 굵고 커다란 상처가 그득한 손 안에서 구겨지는 하얀 종이 서류가 일견 애처롭기 그지없다. 옅은 적색이 섞인 적갈색의 눈과 연하게 샌 잿색 도는 고동색 머리카락의 남성의 얼굴이 딱딱하기 그지없다. 낮고 규칙적으로 쉬어지는 숨소리는 일견 안정적이나 그 바라보는 시선은 흔들리지는 않지만 정적에 휩싸여 한 차례 몰아칠 태풍을 예견한 침묵과도 같았다.
천천히 상처투성이의 손을 내리고 다른 손으로 얼굴을 마른세수하는 남자는 의미모를 숨을 내뱉고 말았다. 토 할 것 같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들이 이제는 오갈데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같았다. 지금 이 쉬어지고 있는 숨소리마저도 현실같지 않아 토악질이 치민다.
남자는 자신의 커다란 꺼끌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생각했다.
3번째-
3이란 숫자의 기묘함-
만남도 3번이면 운명이라고-
낮게 쉬어지는 숨이 어쩐지 턱턱 막혀왔다.
“5...4...46..... 총... 교과...ㄴ-”
끊기듯이 중얼거리는 말은 오로지 종이 위에서만 그 존재를 써내려야하는 비밀이었다.
그리고-
“아...으--- 윽....하아-”
과호흡이라도 오는 듯이 감싸고있는 손을 내려 토할 듯한 입을 가렸다.
다부진 몸을 가진 남성의 등은 강인해보였으나 금세라도 그 옅은 적갈색의 눈에 물방울이 맺힐 것 같은 아슬함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 눈은 마치, 길 잃은 들짐승 같았다.
이 남자의 이름은 김 태원.
지금 막 대좌가 되어 5446부대 전담 총 교관이 된 사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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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환생-이라던가, 빙의-라던가- 트립-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미련없이 지금의 삶을 버리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Written by. 어쩌다가-
토할 것 같다.
물로 입 안을 헹구며 그렇게 생각했다.
기래... 내래 나이가 몇이더네-? 미약하게 미간을 구기며 천천히 검은 런닝 위에 군복을 걸쳤다. 흘긋- 본 군복의 각이 잡힌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기래, 기래. 군복 하믄 역시 각이지. 이제는 입에 익어가는 억양이 강한 말투가 아무렇지 않게 마음 속으로도 중얼거려진다.
끼익-하고 기름칠이 덜 되었는지 철제의 문에서 비명성이 울렸다. 나지막한 한 숨이 저절로 날숨에 숨어 섞여 나온다.
어제 리해랑이와 원류환이가 만났다. 오- 갓. 나보고 어쩌라는 겝니까, 씨부럴? 이제는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기는 하는지 궁금한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정확한 나이도 허깔리는 치매끼 걱정이 그 살벌한 선스나 간나들의 걱정보다 아래로 떨어졌다. 망할. 뭔 놈의 아새끼들이 그래 무섭노? 물론, 한 때 천재-라고 불린 현 최종보스 괴물 취급당하는 김 태원이 된 자신이 더더욱 무서웠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는 사내, 김 태원은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5446부대의 총교관으로 발령된지도 어언 5년이 넘어갔다.
여직도 처음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서류의 얇으면서도 무거웠던 감촉이 잊혀지지않는다. 태원은 그때처럼 자신의 큰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었다. 자연스레 망할-하고 내뱉어지는 욕은 언제나처럼 입 안에서 맴돌았다.
처음 정신을 문득 차렸을 때가 떠오른다.
허허벌판. 그래, 그런 느낌의 곳이었다. 나무가 다 깎여나간 그 곳에 그와 그의 가족이 있었다.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 그는 무심코 아- 북한이구나.하고 깨달았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다. 현실에 치여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산을 뒤지고 몰래 땅을 파헤쳐서 몸 약한 오마니와 아직 한 참 어린 동상들의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지식은 지혜가 되지 못 하고 썩어갔고, 현실에 몸뚱아리는 휩쓸려 무심코 정신을 차렸을 때에 자신은 군에 입대해 있었다.
북한의 군에 입대해 무심코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다행이다. 우리 가족 입 하나가 줄었구나. 다행이다. 굶지는 않겠구나. 다행이다. 그렇게 자신은 살아나갔다. 그러다 문득... 아주 문득- 여상함을 그는 느꼈다. 예를 들어 리무혁 동지의 첩-이라던가. 김정일 대학 서상구 동무-라던가..... 아직 소년이었던 그는 그렇게 넘어갔다. 그는 여전히 빠듯한 현실에 자신이 환생자라는 것을 전생에 대한 기억을 탐구할 새도 없이 그저 몰아치는 현실에 전생과 환생이라는 그 기묘하고도 묘한 사실을 구석으로 밀어 넣고 현실에 맞추기 위해 허덕였다.
그래.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 남으로 내려가기 전까지에는 말이다.
“후우-”
얼굴에서 손을 땐 태원은 문득 붙박이장에 붙어있던 거울을 봤다.
“........”
그러나 차마 그 온전한 모습이 다 들어오기도 전에 눈을 돌렸다.
보면- 마치, 인정할 것 같아 무섭다-라고 생각하면서 한 쪽에서는 아새끼들에게 두려운 것을 가르치지 않고는 자신은 두려운 것이 너무 많다는 그것에 헛웃음이 났다.
덜컥-하고 문을 여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씨부럴-
살벌한 애새끼들하고 면담할 시간이다.
태원은 저도 모르게 남쪽의 그 하늘보다 맑은 새파란 하늘을 보며 속으로 빌고 말았다.
오- 갓. 오늘은 부디 평안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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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삼켰다.
아- 아새끼.. 거 허벌라게 살벌하네. 피를 한웅큼 뒤집어쓰고 해맑게 쪼개는 자신의 앞에 빤스만 처입은 타잔의 후예는 바로 리 해랑. 썩을 놈의 리 무혁 동지 아들되시겠다. 그 아비나 아들이나 성격이 참으로 엿이다. 그것도 쌍엿.
태원은 자신을 대좌 자리에 앉히고 총교관이란 쌍엿을 선물한 리 무혁 대장 나리를 떠올리며 사고친 간나새끼를 빤-히 쳐다보았다. 기래. 느그 얼굴은 분명 느그 오마니에게 물려받은 기네. 안 그럼 그 씨에서 저딴 얼굴이 나올리... 아, 내가 뭔 생각을 한 기네? 속으로 자신에게 짜게 식은 눈을 보네주며 자신의 한 숨에 움찔-하며 몸을 떠는 리 해랑에게서 시선을 때었다. 그라도 자신이 지 교관이랍시고 쪼니 참으로 다행...인기네?
잠깐의 의문을 뒤로 하고 숨을 폭-내쉰 태원은 이내 손을 휘휘- 저었다.
“됐다. 나가도록-”
“.........”
아니, 이 간나새끼.... 내래 걍 나가라고 인심써주지 않네? 또 내래 뭐 불만이 있기에 그래 빤- 꼬나보네? 굳었다 생각한 눈가에 경련이 오자 태원은 들숨을 쉬며 뭐냐는듯이 해랑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채 성장하지 못한 어린 몸에는 자잘한 상처가 그 나이 때 아이들에 비해 그득했다. 물론, 자신은 그보다 더 심했었더랬다.
“내래- 리 무혁 대장 동지 아라서 봐주시는 깁니까?”
생글거리며 쪼개는 얼굴이 싸-하니 굳어져서는 하는 말에 이제는 골이 아프다. 오- 갓. 오늘 몇 번째 신을 부르는지 알 수 없다. 아까, 리해랑이가 애새끼 하나를 죽사발 냈을 때? 대련이라고 했더니 친절하게 아새끼 하나를 골로 보낸 원류환이를 보았을 때? 그도 아니면 남조선 아새끼면서 내래가 모를 거라 생각하고 숨어들어온 서수혁이? 아- 또 뭐 있었던가? 기래, 기래.... 이번에 들어온 완우? 관우? 여튼, 이번에 새로 들어온 평균에 비해 나이 좀 처먹은 애새끼.... 씨부럴... 적자데쓰. 겁나 잘 처먹어. 망함. 태원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태원을 빤-히 바라보며 반항아의 특유의 눈을 던지던 해랑은 움찔- 몸을 굳혔다. 태원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랑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더랬다. 어쩐지 조금 안절부절 못 해지는 그 느낌이 해랑은 익숙치않았다.
“내래.... 지위봐가면서 행동하는 사람같네?”
딱딱하게 나오는 목소리는 이미 습관처럼 일부처럼 굳어진 억약과 말투였다. 낮은 바리톤의 음성과 억양이 센 북의 말이 잘 어우러져 들린다-하고 남조선 말과 무심코 비교했던 해랑은 움칫- 생각하며 눈을 또르르-굴렸다. 거 아새끼.. 진짜 애미는 잘 만났구만기래. 그 순둥한 얼굴에 속으로 다시 한숨을 내쉰 태원은 이내 말을 골랐다.
그래, 아마 작중에서도 해랑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더랬지? 어디서부터 새나간 말인지는 모르나 흘러흘러 나간 말이 2군 훈련병이 있는데 까지 갔는지는 모르나 겁도 없이 리해랑이 앞에서 깝깝친 멍청이가 있었던 듯 했다.
툭-하고 해랑의 머리 위로 큰 손이 떨어졌다. 움칫- 몸이 굳는 느낌과는 달리 조용히 한 번 쓰다듬고는 떨어지는 손은 그래... 마치, 느껴본 적 없는 그 아비의 손같다고 무심코 해랑은 생각했다.
“아무리.. 군이라도- 상대를 봐가면서 입을 놀려야쓰는 기야-”
한 숨처럼 나온 말에 해랑은 눈을 또륵- 굴렸다. 뺨이고 얼굴이고 목이고 온 통 피를 뒤집어 쓴 모습과는 달리 어린애다운 그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 뱉어질려는 한숨을 삼키고 등을 돌렸다.
“약하면- 죽는기네. 알갔음- 나가라우, 동무.”
중얼거리듯 속살이는 바리톤에 눈을 깜빡이던 해랑은 잠시 그 큼직한 등을 한 번 바라보고 경례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의자에 눕듯 앉아 기댄 파하-하고 태원의 입에서 한숨과 함께 터지는 탄식....
“닝기미- 돈은 쥐똥꾸녕만큼 주믄서 아들은 겁나게 처넣네, 씨부럴.”
5446부대 총교관 김 태원.
현재,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의 액수와 들어오는 훈련병과 반비례되는 식량의 양=적자의 모습에 탄식을 내뱉는다.
그런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년들에게 서로의 감정을 죽이라하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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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제대로 인식했을 때의 그 황량함을 여직 기억한다.
그 곳은 다른 의미로 밑바닥이었다.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은 눈을 두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었다.
저 헐벗은 산 너머의 그네들... 그래, 높은 동지들만이 하루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네들이, 그 동지들이 우리를 굶게 않도록 이끌거라고, 힘들지않은 그 통일조선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단, 우리 어머니만큼은 아니였던 듯 했다.
나는....
그 어머니를 위해-
군의 문턱에 들어갔다.
Written by. 어쩌다가-
내쉬는 한 숨이 참으로 불온하다. 망할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런 간나새끼들... 이를 북북-갈..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련만 근엄하신 총교관나리의 모습을 해야함으로 입만 굳게 다물어야했다. 눈을 깜빡이며 저짝에서 열나게 뛰는 애새끼를 봤다. 여기 있는 누가 그런 것을 신경쓰겠냐마는... 아쉽게도 어느 상대의 상태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태원은 이내 쉽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무서운 쌍간나 원류환이. 저 꼬꼬맹이동무 아가야 왼다리 벌써 찔렀네? 츳-하고 혀를 찬 태원은 슬쩍 발걸음을 돌렸다. 참고로 태원과 그 꼬꼬맹이동무의 거리는 건물 옥상과 아래다. 천천히 걷던 태원은 그러나 보폭을 평소보다 빠르게 하고 있었다. 흐미- 무서운 간나들. 에라이- 독한 새끼들. 혀를 차면서 몸을 살짝 떤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교관실로 들어가 찬찬히 붙박이장을 뒤졌다. 이제와서는 잘 쓰지않는 남한에서 가져왔던 깨끗한 붕대와 연고 등이 살풋이 상자 안에 소복이 정리되어 담겨있었다.
“............”
방금 전까지도 가볍디 가벼운 생각을 하던 태원의 얼굴이 깊게 침잠되었다.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듯한 얼굴 표정은 마치 시커먼 저수지의 끝없는 밑바닥같이 시커맸다. 이 상자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 상자가 전달받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상자를 받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 비가.. 오겠군.”
낮게 깔리듯 나온 말소리가 어째 떨리듯이 흘러나왔다. 마치 지금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같은 울림이었다.
감았다가 뜬 눈의 깜빡임의 그 한 순간으로 태원의 얼굴은 원래의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완고한 총교관의 얼굴로 돌아와있었다. 마치, 방금 전의 그 어둠은 없었다는 모습이 이질적이기 그지없었으나 그의 방은 언제나와 같이 황량함을 가지고 언제나와 같이 그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의 손에 둘둘 말린 깨끗한 붕대와 소독욕과 거즈 등이 들렸다.
그는 그것들을 들고 천천히 문을 나섰다.
주고자 했던 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나, 살아있는 자를 위한 것이니 써야겠지.
밖은 어느 새 새카만 어둠과 함께 질척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지급되는 우의조차 쓰지않고 태원은 밖을 거닐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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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갓. 이런 씨부럴. 어찌하여 타이밍을 이리 엿같이 주었나이까- 한탄과는 달리 여전히 굳은 얼굴의 태원은 자신 앞에 서서 경례를 하고 부동자세인 류환을 보았다. 기래, 시간이 흐르긴 했디야- 조막만한 소년들이 청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얼핏 그것을 느낀 태원은 느릿하게 한 숨을 들숨과 함께 삼켰다. 고조 이 선스나... 겁나 무섭구만 기래. 설핏 또 다른 조막만한 꼬꼬맹이를 떠올리며 태원은 그 꼬꼬맹이 허벅지에 칼질한 류환을 새삼스레 무섭다고 느꼈다. 에라이- 자비없는 간나같으니라고....
알아서 츳츠-하고 차질 것 같은 혀를 부여잡고 그저 조용히 류환의 어깨를 두들이며 언제인가 해랑에게 했던 것처럼 속살거리듯 중얼거리며 스쳐지나갔다.
“-적당히 하라우, 원류환이.”
그런 태원의 뒤로 움찔- 몸을 굳히며 눈이 흔들리는 원류환이 있었지만, 물론 태원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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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 떨어지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걸어가던 태원의 눈에 어두컴컴한 뒷간이 보였다.
멈칫-하고 태원의 발이 멈췄다.
‘쒸발, 북한 화장실 겁나 무서, 레알 트루 무서.’
깜깜하기 그지없는 길을 잘도 걷던 태원은 푸세식 화장실의 무서움(똥통에 빠진다던가.. 해서 질식사가 다수 있었더랬다.)에 몸을 푸르르- 털었다. 그의 몸에 떨어진 물방울이 빗속에서 기운을 잃고 비와 함께 흙바닥에 떨어진다.
그런 태원의 한 손에는 어느 새 뻑뻑하게 굳어있는 리해진의 목덜미가 잡혀있었다.
마치, 짐승이 사냥감을- 또는 새끼를 물고가는 모양새에 가까웠다.
“...그...그....초..총교관도-”
“......”
오늘 같은 고향에서 온 아새끼 하나를 모가지에 주먹질로 골로 보낸 꼬꼬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낑낑거리며 당황하는 해진에 태원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를 않네- 고조 무서운 아새끼들..... 속으로는 덜덜 떨어도 겉으로는 멀쩡-하다 못 해 여직 카리스마 풀풀 날리는 대좌님이니 참으로 다행이지 아니한가. 태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비 특유의 비린내 사이로 혈향이 맞아졋다.
물론- 언제나 이곳은, 이 건물은, 이 땅은 피비린내가 가신 적이 없으나 지금 코 끝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쇠내음은 방금, 그리고 지금 나는 것. 그것도 자신이 목덜미를 쥐고 있는 꼬꼬맹이에게서- 물론, 그 꼬꼬맹이조차 쇠내음을 언제나 몸에 뒤집어 쓰고 다닌다지만....
“벗으라.”
“...네..네?”
...순간, 자신이 소아성애자가 된 느낌에 태원은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헐, 나 정상임. 나 진솔한 노말임. ...물론, 동정이지만. 조금만 있으면 고서클 법사가 될 수 있지만... 태원의 뇌속에서 탁-!하고 손날로 자신에게 그만!하며 태클을 거는 작은 태원이 튀어나왔다. 그러는 사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꼬꼬맹이가 뒷간 처마 아래 바닥에 주저앉아(태원이 손을 논 것도 있으나 1차 폭풍(류환)이 지나자마자 온 2차 폭풍에 해진은 굉장히 긴장을 한 상태였다.) 떨더니 천천히 바지를 내리기 시작... 아 쉬발- 태원은 왠지 아동청소년법에 접촉되는 그런 일을 하는 느낌에 상당히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앉으라우- 꼬맹동무.”
짧게 줄여 툭 내뱉는 말에 무려 정좌로 앉아있... 야, 이 급읍는 간나야. 니 상처 터졌다. 태원은 이번 만큼은 절로 터져나오는 한 숨을 삼킬 수 없었다. 뭐 이런 간나들이 다 있네? 적어도 자신은 자신의 상처가 나면 꼬박꼬박 어떻게 해서든 적당한 치료를... 아- 애는 아직 어려서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나? 츳-하고 차지는 혀조차 이번만은 막지 않은 태원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몸을 사리는 해진에게 무릎 한쪽을 꿇고 앉았다.
다시 터져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 분명, 자신 외의 교관이나 훈련병들에게 들킨다면 얄짤없이 광산이나 막일하는 곳으로 동원되리라. 그도 아니면 그저 쓰레기 더미 사이의 시체가 하나 더 늘 뿐. 태원은 저도 모르게 나간 손이 해진의 허벅지 위에 닿았음을 느꼈다. 그 살풋 떨리는 맨 살의 감촉에 태원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모른다.
말랐다. 아직 들어온지 오래된 것이 아니니 많이 먹지도 못 했을 터이니 뼈 위로 붙지도 못한 살이 애처로울 정도로 말랐다. 그런 주제에 근육이 붙기라도 하는지 애같지 않은 단단함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태원은 입술을 짓씹었다.
너무 많다. 이곳에는... 이런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 자신의 동생들도- 흐릿해지는 시선 새로 어린 아이 몇의 인영이 비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태원은 품에서 가져온 가잿수건으로 찬찬히 손을 닦고 들고 온 붕대와 거즈, 반창고, 소독약 등을 늘어놓았다. 천천히 곱게 피는 다리가 못 먹은 아이치고는 곱게 뻗는다. 그 다리를 꿇은 무릎 위에 올리고 상처 위로 소독약 반을 들이부었다.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처마의 구멍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신경을 거스른다.
투두두둑- 후두두두둑-
“큽... 으...아-”
“......”
어린 미성의 삼키는 신음에 다시 나올 것 같은 한숨을 넘기며 연고를 바르고(꼬매야 할 성 싶었으나 태원은 깔끔하게 꼬매는 것은 포기하도록 했다. 어린이의 회복력을 믿어요.) 거즈를 댄 후 반창고로 고정하고 그 위에 다시 붕대를 솜씨 좋게 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깔끔하게 두르기까지 몇 년이 걸렸던가- 그 시간동안 몇 번이나 몸에 흔적을 남겨야 했던가- 그 흔적동안 얼마의 피를 손에 묻혀야 했던가- 불현듯 침잠된 저수지 아래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해진의 여린 다리를 타고 흘러올라와 얇은 다리 위에 감겨진 붕대를 통해 투영되었다.
“....그만... 들어가 쉬라우. 꼬맹동무.”
그 시간을 알기에-
이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어......”
당황하는 해진의 머리를 언젠가와 누구에게 했던 것과 같이 헤집으며 미미한 미소를 머금다 천천히 뒤돌아 갔다.
밤비 사이로 흐릿하게 환영이 보인다.
고달프기 짝이 없는 그대의 미래를 위한 비인가-
지금 내리는 비는 누구를 위한 비일까....
태원의 얼굴은 돌아서는 그 순간 차갑디 차갑게 식어 마치 무저갱의 무덤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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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영화로, 소설로 보는 그네들은 아름답고 멋지며 작렬하다.
왜냐면 그들은 결국 화면 너머, 이곳에 없는, 저 뇌 속 세상에서 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 되면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신은 현실이 되어 체감하였다.
배곪는 가족과 세뇌라 할 수 있는 나라와-
손을 끈적하게 적시는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몸.
"......."
눈감은 하늘은 구름 하나없이 따가운 햇빛을 내리 쬔다.
그의 발아래에 죽어있는 마지막 남은 가족이 이제야 왈칵 겁이 났다.
태원은 그제야 덜덜떨리는 몸을 인식했다.
Written by. 어쩌다가-
"........."
반짝-뜨인 눈가가 발간 느낌이었다.
이불을 걷으며 일어난 태원은 눈가를 비벼보았다. 물기 없이 퍽퍽한 눈은 그저 발갛게 일어났을 뿐이다. 태원은 누구와는 다르게 적당히 옷을 껴입고 있던 몸뚱아리를 천천히 일으켰다. 여전히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 사실에 안도하고 절망한다. 태원은 식은 땀으로 흠뻑 적셔진 몸을 대충 천으로 닦으며 검은 런닝을 벗어 붙박이장에 처박고 새로운 런닝 하나를 꺼내들었다.
잠시 처박은 쭈글거리는 런닝을 본 태원은 이내 붙박이장 안을 뒤져 나온 담배를 입에 물고 찬찬히 불을 당겼다.
"후우-"
몽글거리며 흩어지는 담배 연기는 어디서나 똑같구만, 기래.... 침잠되는 기분을 추스르며 담배를 씹듯이 깊게 빨아든 태원의 폐가 썩어들어가고 목구멍을 긁어내는 듯한 연기에 감사했다. 적어도 피고 있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할 수 있었다.
"......."
문득, 담배갑을 본 태원은....
"-콜록- 콜록- 쿠훕- 큽-"
에라이.. 쌍간나같은.... 아무 생각없이 막 집어 핀 이 담배는 망할 소리가 나오게도 리해랑이에게서 압수한 담배였다. 아... 망했구먼, 기래. 돌려주기로 했던 것을 그새 까먹었다니... 태원은 급작스레 다시 급부상하는 치매끼가...하는 수심에 잠겼다.
썩을 놈. 새장새장하면서도 잘도 날래날래 싸돌아 댕기면서 폴짝이며(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살벌한) 다니는 기묘한 눈의 청년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씹던 태원은 이내 나오는 기침과 함께 쉬어지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깝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배 한 갑으로 땡쳐야 할 듯 했다. 담배의 필터를 다시 입에 물며 씹던 태원의 시선 저 너머로 꼬꼬맹이였던 연갈색과 청록이 묘하게 섞인 눈이 떠올랐다.
'..아제 눈은 왜 기래네? 안 아프네?'
"...큽-"
그 올망졸망하던 꼬꼬맹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살벌하게 컸네?!?? 망할- 리무혁이 때문이네?!??? 리무혁 이 쌍간나!!! 잠깐 눈가를 가린 태원은 종종 분명 성인 여성의 손자국이 확연한 뻘건 멍을 달고 밖에 군부대(특정인 외에는 들어올 수 없던 곳) 안을 나돌아 댕기던 꼬마를 떠올렸다.
..아, 그래서 리해랑이가 흑룡조 조장이 된기구만, 기래. 이상하게 흘러가는 생각을 부여잡기도 전에 울리는 기상 소리에 멍하니 갖춰입은 군복의 각을 맞추고 붙박이장에서 대충 꺼낸 담배2곽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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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술 아려물며 터져나오는 비명성을 참는 어린 것들을 보며 태원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어렸을 적 자신도 줄기차게 받던 고문 훈련은 역겨울 정도로 비릿한 쇠내음이 가시지 않는 방에서 이루어지고는 했다. 자신은 좀 더 다채로운 교육을 받았지만, 여기 있는 5446은 다행스러운지 알 수 없으나 지원금 미달로 흔히 말하는 장기적인 고문 훈련은 받지 않았다. 그래... 예를 들면 그 빌어먹을 하얀 방. 태원은 이를 벅벅 걸리게 만드는 한 때 자신이 들어가야 했던 하얗기만 했던 망할 시멘트 방을 떠올렸다.
“.....”
그런 그의 눈에 서수혁이 눈에 띄었다. 에라이, 무서운 간나 같으니라고... 속으로 한 번 부르르-떨던 태원은 이내 고통에 찡그려진 검붉은 빛의 눈과 마주쳤다. 도베르만... 그래, 전생에 책으로 보았던, 그리고 현생에 군견에게서 도망치는 훈련을 할 때 잠시 보았던 견종과 닮았던 그 검고 위협스러워 보이는 개가 떠올랐다.
“..........”
머릿 속으로 아릿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들과 눈가에서 욱신거리는 상처가 아리다.
그 날의 밤은 유독 어두웠다. 그에 감사하며 혁명전사라 불리던 병사 다섯을 죽인 이와 맞붙었다. 잠깐의 방심이었다. 서수혁. 서수혁이의 이름을 듣는 순간 숨이 막힌 듯 굳어지는 몸에 눈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뻔 했었다.
핏물로 흐릿한 벌건 시야에서- 그 굳은 피색깔 같은 어린 눈에서 떨어지는 투명한 눈물과 시선이 마주쳤ㄷ-
멈칫- 생각을 멈춘 태원은 이내 또렷이 맞춘 시야에 그 때보다 더 어두운 색을 띄는 검붉은 눈과 마주쳤다. 흔들림 없이 마주치는 눈이 곧기 그지없으나 일견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래... 저런 눈이 자고로-
‘영혼까지 뒷통수 처맞고 내가 고자라니 드립칠 눈이지...’
아련아련해진 가슴을 작은 태원은 부여잡으며 이를 벅벅 갈았다.
오- 갓. 이 놈의 애새끼들은 왜 이리 살벌한기네? 그런 주제에 왜 이래 운명이 지랄 똥이거네?!?? 왠지, 상당히 찔리는 느낌에 눈을 돌리자 으득-하는 이빨가는 소리가 들렸다. 쉬..쉬발 무서운 남조선 선스나.... 내래, 초딩보다 무섭다. 태원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억지로 틀은 생각.
우습게 가볍게 틀은 생각 길과는 달리 맞아지는 혈향은 지독하다. 마치, 이 곳이 지옥의 끝이라도 되는 양 느껴지는 혈향에 구역질이 나지만 다른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목 안으로 삼킨다.
지금 맞아지는 향이 자신보다 어린 것들에게서 나는 것이라는 것을 일부러 외면한다. 비명을 삼키는 이들 중에 죽어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시선을 돌려 숫자로 계산한다. 이제는 어느 한 구석이 죽은 눈으로 같은 나이 뻘의 선스나들에게 고문 연습을 하는 이들에게 내뱉는 말은 그저 악담일 뿐이다.
조용히 이 길을 뒤로한 채 나오는 태원의 뒷짐 진 잔상처가 그득한 큰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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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라우.”
휙-하고 던져지는 담배 한 곽.
격하게 쉬어지는 숨을 가다듬으며 막 약물 고문을 끝으로 나온 지친 몸을 추스른 서수혁은 붉은 기가 다분히 섞인 눈을 굴려 던져지는 담배를 잡았다.
상표가 뭔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단지, 왜 자신에게 이것을 던졌냐하는 것에 의문이 간다.
아버지의 원수.
살인마.
스파이.
이유를 댄다면 수없는 이유로 상대를 죽일 명목이 나온다. 그리고 적어도 서수혁 자신은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고 그리 생각한다.
“.......”
경례조차 없는 자신을 그저 말끄러미 쳐다보는 자신과는 다르게 옅은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눈에서 슬그머니 시선을 땠다. 쥐어지는 담배곽이 조금 우그러지게 잡았지만 이내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 개피 들어 입에 무는 그 손이 고문의 여파인지 그도 아니면 앞에 있는 상대에 대한 격한 감정 때문인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담배의 연기가 매캐하다.
그리고-
“...큽..”
담배에 진통제 같은 것이라도 섞은 마냥 둔-해지는 감각에 살풋 내리깔았던 눈을 위로 떴다. 여직 자신을 내려다보는 옅은 적갈색의 눈 중 오른쪽에 이마에서부터 광대까지 내려오는 긴 상흔이 보였다. 그것은 자신에게 습관과도 같았다. 서수혁은 그 상흔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앗다.
그러나-
무슨 의도냐? 무슨 생각인거냐? 나에 대해 아는건가?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의문에 다잡은 마음이 흔들렸다. 고국을 놔두고 북한으로 넘어와 숨 막히도록 달려온 중간 중간에는 꼭 이 사내가 있었다. 그 때의 눈과는 다른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 상흔을 간직한 채 마치 자신을 쉬게라도 하겠다는 듯이 중간 중간에 파고들어와 조용히 자신을 내려다봤다.
“...계속 할거냐?”
고저없이 나오는 바리톤의 음성은 남조선, 고국의 그것과 전혀 다름이 없을 정도로 억양부터 모든 것이 같았다. 사내는 언제나 자신 앞에서는 고국의 말투를 썼다.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운....
‘...에..에라이, 무서운 선스나 아새끼... 이만하믄 된그지 뭐 이리 오래 있네?’
태원은 묵묵히 총교관에 대한 예의를 씨발라먹고 묵묵히 담배를 빠는 서수혁이를 보며 속으로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서운 간나... 남조선이고 북조선이고 씨부럴 허구헌 날 무서운 것들만 오네?
속으로 이를 북북- 가는 태원은 이중 스파이인 주제에 어째서인지 자신 앞에서는 푹- 풀어진 서수혁이를 보며 혀를 찼다. 에라이, 한가한 아새끼. 빨랑 고조 느그 집으로 꺼지라우!
태원은 살벌한 아새끼의 눈초리가 못내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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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유독 추웠다.
살을 에는 추위의 혹독함은 여전히 겨울만 되면 인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계절이었다.
옆집의 누가 죽었다. 저 건너편의 마을이라 부를 수도 없는 촌락은 이번 겨울에 다 죽을 것이다. 그런 날은 이미 수도 없이 격고 느껴왔기에 무신경해져갔다.
단지, 그 날을 기점으로 하나 변한 것이 있었다.
아- 난 죽었었구나.
그러나, 자신의 꿈은 여직 변하지 않았다.
Written by. 어쩌다가-
리해랑
-'그'를 본 것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 날 따라... 아니 평소에도 그립던 오마니의 생각에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고 귀히 여기던 본처를 바라보았더랬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은 수순마냥 그녀의 손에 손찌검을 당하고 집 밖으로 쫓겨났었더랬다. 발을 에는 듯한 추위에서 얇은 옷 한 자락인 자신에게 버팀목으로 있었던 것은 붉은 빛을 띄는 낡아가는 천조각이었다.
오마니가 남긴 유일한 2개의 물질 중 하나. 손에 꼭 쥔 그 검붉은 천조각을 살풋 손을 열어 그 낡아가는 천조각 위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한 온도는 느껴지지 않으나 어미의 향기가 느껴진다. 자신은 그렇게 숨을 들이쉬고 내셨더랬다.
그것이 마치 생명줄인 것처럼 느껴져 그 때에는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그 시절 자신은 리무혁 동지의 치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손찌검당해 집 밖으로 쫓겨나간다해도 자신을 도울 이도 도울 수 있는 이도 그 근처에는 없었으며, 자신이 그 치부인지 알아보는 이도 없었다.
그런 자신이 ‘그’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하늘에 계실 어머니의 선물이였을까-
잠시 고개를 들고 물기를 머금은 천을 볼 때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대번에 작디작은 자신의 손에서 검붉은 천조각을 뺏어 날렸다. 그에 사색이 되어 그 마치, 가끔 꿈에서나 보는 어머니의 뒷모습 같아 맨발임에도 불구하고 헐레벌떡 그 뒤를 쫒았다.
손을 떼면 사라지는 그 꿈과 같이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그 때만큼 절박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 작은 손이 작은 발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붉은 자욱이 허연 눈밭을 수놓기 시작했을 즈음- 그 오마니의 피 같기도 했던 천조각이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쫒으며 내달리던 자신의 눈에 문득 왠 남자의 군화가 보였다. 사내는 허리를 찬찬히 숙여 천조각을 주워들었다.
그 손을 따라 올려다본 사내는 한 쪽 눈에는 붕대를 들어난 눈은 발갛게 인 눈가를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물린 담배를 한 손으로 뺀 사내는 이내 하얗게 이는 입김과 함께 뿌연 회색의 연기를 밖으로 내뿜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사내의 눈이 우는 것 같다고 어린 시절의 자신은 생각했었더랬다.
“...꼬마동무.. 여서... 뭐하네....”
그러면서 천천히 자신에게 천조각을 건네는 남자에 그저 굳은 몸으로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혹여나 자신을 그 여직 씩씩거리며 실핏줄 선 본처에게 데려갈까봐- 그도 아니면 싸늘한 표정의 부친 같지도 않은 리무혁 동지에게 데려갈까봐- 아니면... 날라올지도 모를 손이 무서워서-
그러나 남자, 사내는 해랑이 지나왔을 법한 붉은 자욱이 가득한 눈길을 잠시 보고는 쓴 눈을 해보이며 천천히 꼭 천 조각을 쥐고 어떠한 것에 질린 눈을 했을 법한 자신에게 천천히 몸을 숙여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어올렸다. 처음.. 아마도 기억 못 했을 오마니의 품 외의 사람의 품에 안겼을 때.. 그 공포와 이질적인 안도감과 추운 겨울날의 따스한 온도가 나이가 든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잠깐... 내래 집에서 쉬고 가게, 꼬마동무.”
낮게 쉬어지는 한숨 같은 말에 자신은 그 이질적이게도 높은 온도의 품에 파고들었다. 남자, 사내는 입에서 뱉어낸 담배를 군화발로 눈 위에 비벼 끄고는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가듯 몸을 돌렸다. 남자의 품에 안겨 보인 리무혁 대장 동지, 자신의 부친의 집이 보였다.
으리으리해 보이는 집. 차갑기 그지없어 뵈이는 집. 온기없는 집.
그곳은 어렸을 적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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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6부대.
창설 때 시험타로 썼던 부대의 군인들을 교관으로 창설된 인민공화국 최고의 비밀부대.
“.......”
그곳에 당신이 총교관으로 간다는 말에 재미삼아 궁금증을 안고 또 아비라는 이의 말에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한 점의 거리낌 없이 들어갔던 이유는 거기에 당신, ‘김 태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볼에 묻은 피라던가, 빤스 한 장만을 걸친 헐벗은 몸 위에 흩뿌려진 피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당신이 한숨을 쉴 때마다 절로 몸이 굳었다.
그렇지만, 그 쌍간나새끼가 내 어미를 욕했는걸? 속으로 들리지도 않을 변명을 하며 저도 모르게 눈을 내려 발가락을 꾸물거렸다. 여직 웃고있는 얼굴이 조금 당기는 것 같기도 했다. 에라이, 망할... 역시 조용히 뒷산에 묻었어여 했어! 혀를 속으로 차면서 흘끔-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내셔지는 한숨을 보고 움칫- 심장이 굳었더랬다.
“됐다. 나가도록-”
“.........”
얼굴이 굳어졌다.
당신도 그런 걸까-? 다른 교관들처럼 자신이 같잖지도 않은 아비라는 양반이 높으신 대장 동지라 못 본 척, 들리지 않은 척 그리 눈을 돌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있었던 그의 행동들이 짜증날 정도로 가증스러워졌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이 그리 날카로웠던 것 같다.
“내래- 리 무혁 대장 동지 아라서 봐주시는 깁니까?”
그러나 자신의 말에 살짝 어두워지는 얼굴 낮에 몸이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는걸?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오마니의 낡은 천자락과 사진 한 장, 그리고 모두 묵인 아래의 아버지 같은 당신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가끔 자신의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자신의 무릎에 앉혀놓고서는 읽어주던, 별의 별 사고를 쳐도 나지막한 한 숨을 쉬고 같이 뒤처리를 해주던, 어쩌면 오늘도 만날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부러 본처의 손찌검에 반항 한 번 없이 맞고 나와 그가 해주는 치료를 달게 받았다.
그래서 가끔 의심이, 불안감이, 그가 주는 정에 굶주려서 겁이 났었다. 그것이 날카롭게 벼려져 칼날처럼 당신에게 묻고는 했었더랬다.
아마도-
지금처럼.
자신을 빤-히 보는 붉은 기가 도나 연한 색의 딱딱한 눈에 몸과 절로 자신의 한 말에 실망한 것은 아닐까 기분나빠하는 것은 아닐까 안절부절 못 하게 된다.
..내.. 내래 이기 문제인기네!! 자신의 입을 속으로 퍽퍽 때리며 혼자 생난리를 치던 자신의 귀를 언제나처럼 낮은, 그러나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래.... 지위봐가면서 행동하는 사람같네?”
거.. 여전히 목소리 좋슴네다, 대좌님. 멍하니- 요즘 이래저래 들려오는 남조선 말에 무심코 비교하던 자신은 참으로 목소리가 좋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이내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살살 태원의 눈치를 보며 눈을 굴렸다. 어쩐지 저 사람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어려지는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만큼 좋기도한 모순된 감정을 가지게 된다.
툭-하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큰 손에 군에 입대 후로는 받지 못 한 스킨십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한 편 자신은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었던 아비의 커다랗고 따스한 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 손에 그득 난 잔상처가 피로 물들어져 만들어졌다 해도 말이다.
“아무리.. 군이라도- 상대를 봐가면서 입을 놀려야쓰는 기야-”
그 때처럼 한 숨같이 나오는 말에 눈을 또륵- 굴렸다. 어쩐지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에..에라이- 내래가 무슨 애새끼네?!?? 그의 앞에만 서면 아직 어리고 어렸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약하면- 죽는기네. 알갔음- 나가라우, 동무.”
천천히 등을 돌리며 속살거리는 그 말이 묵직했다.
멋있다-라던가 그런 것 보다는 회한이 담긴 것 같은 말에 기분이 절로 울적해졌다. 잠시 그의 큰 등을 보다가 경례를 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탁-하고 닫히는 문에 등을 기댄 체 스르르- 주저앉았다.
“아- 닝기미...”
조금만 더 참을 걸..하며 자신의 손에 걸레짝이 되어 죽은 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금방 태원의 얼굴로 교체된다. 그 낮게 어두워진 얼굴이라니...
오늘 밤은 아무래도 침상 위에서 발차기 연습을 할 것 같았다.
“쪽시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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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동류애에 가까웠다.
미련하고 미련한- 그러나,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이제는 집착에 가까운-
멍청하게까지 보이는 모습이....
Written by. 어쩌다가-
원류환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리고자 했었다.
처음 입대했을 때 그, 김 태원 대좌는 자신을 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눈가를 찌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의 뒤를 눈으로 쫒았다.
그에 대한 소문은 입대한 후 여러 곳에서 원치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괴물’
그에 대한 가장 정확하다고 하는 호칭이었다.
당을 모욕했다며 작은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수용소에 보낸 냉혹한 이라고, 몇 번이고 남한에 내려가 공작을 벌였으며, 변절자들을 가장 은밀하고 확실하게 죽였다고, 다른 이들과는 달리 단 한 번도 변절자들처럼 남한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인민공화국 최고의 군인이라고-
그리고-
“큰 동작을 보이지 말라지 않았네.”
무뚝뚝한 목소리로 자신을 내동댕이친 사내의 차가운 눈에 메말랐다 생각한 자신도 몸을 움츠렸다. 한 치의 살기도 없으나 동시에 감정이 죽은 듯한 흡사 죽어있는 동무들의 시체의 눈과도 같았다.
그런 그의 눈을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가끔... 속에서부터 떨릴 정도로 흠칫하고는 만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괴이한 행동- 예를 들자면.....
“.....”
입대했을 적 보았던 그 여상한 눈가를 찌푸린 눈이 자신을 보고는 나지막한 한 숨을 쉬며 뒤돌아선다. 마치, 속이 답답하시다고 가슴을 치실 때의 오마니와 같은 모습이었다. 머뭇대며 대좌를 보았으나 이미 그는 저 멀리 깔짝거리고 있던 리해랑이의 정수리에 주먹을 박아넣고 있었다.
차갑고 살에는 5446부대에서 가끔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는 여상하게도 그 누구에게서도 아닌 총교관이라는 김 태원 대좌에게서였다.
그런 그는 자신에게 가끔 여상한 말을 하고는 했다.
‘..조원들 가족들은 잘 있네-?’
그렇게 말하는 대좌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있어서 저도 모르게 오마니를 떠올리게 했다. 그저 모르겠다 대답만을 읊조렸던 자신을 한 숨을 쉬며 등 돌리던 그가 나중에야- 아주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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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해진이 꼬마동무에게 음식을 갔다주고... 몇 마디하고 마주친 김태원 대좌에 온 몸이 바싹- 말라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잘 못 되면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집에.. 집에 계신 오마니는?! 그 생각까지 미치자 갑작스레 뭐 하러 모르는 꼬마동무 사정을 봐줬는지 후회가 몰려왔다. 타는 속과는 달리 뒤에 있을 리해진의 걱정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태원을 보자마자 자연스레 한 경례와 소속을 끝으로 찾아온 침묵이 마치 목을 조르는 올가미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염려와 걱정과는 달리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들이는 당신에 굳은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는 일시동결되는 것을 느꼈다.
“-적당히 하라우, 원류환이.”
뭘... 뭘 알고있길래, 그리 말하는 거네?!?? 격하게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묵직한 음성에 시야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 우의 하나 걸치지 않고 축축히 젖은 상대를 돌아보지도 못 한 채 망부석처럼 거기에 한 참을 서있었다.
아마 이 때 즘에 짐작하지 않았을까- 눈 돌리고 있던 잔혹한 사실이, 자신보다 더 독하게 그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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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비오는 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무심코 그 날을 떠올리며, 오늘을 떠올리며 떠올렸다.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은 군복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 군화 뒤축에 힘을 준 채 차렷 자세를 한 채 그곳에 못 박힌 듯이 오는 지프를 기다렸다. 그 지프가 자신을 박는다해도 자신은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있을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가르쳤다.
자신에게 오던 지프가 어느 지점에 멈췄다.
그 지프에서 천천히 그가, 김태원 대좌가 천천히 내렸다.
“....98-0075 원류환.”
잠시 자신을 말끄러미 쳐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몇 년이 지나도 날카로운 굵고 낮은 목소리에는 그 언제나와 같이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그 시체 같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같다고 군모 아래로 생각했다.
“넷! 98-0075 원-”
“그만.”
거센 빗줄기를 지나쳐 들려온 목소리는 어쩐지 작았다.
“이 시간 이후 내게 대답할 필요 없다.”
자신을 보며 찌푸리는 눈가를 따라 오른쪽 이마에서부터 난 상처가 일그러진다.
“-우리가 다시 만나면, 조국통일을 이루어 위아래 없이 얼싸안고 형제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 죽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7분 뒤 임무와 침투경로가 적힌 지령이 온다. 지령을 받으면 5분 있다가 그대로 실시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공을 쳐다보다 이내 어두운 방파제 쪽만을 응시했다. 그의 시체같은 시선이 참으로 공허했다. 잠깐 달싹이던 퍼렇게 질린 상대의 입술에서 천천히 말소리가 들렸다. 거세진 빗줄기 새로 들린 그 웅얼거리는 소리는 어쩌면 욕과도 닮았던 것 같았다.
이내 자신을 본 대좌의 눈은 자신은 처음 보는 잔잔하기 그지없는 눈이었다.
“9년 동안. 동무를 담당한 사람으로서 한마디만 하겠다.”
그렇게 말을 고른 대좌는 눈을 감았다 뜨며 속살거리듯이 말했다.
“죽디마라.”
빗줄기 사이로 잔잔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는 빗줄기 때문인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금 들려온 말은 그가 할 말 같지 않았다.
“절대. 죽지마라.”
그리고 다시 일그러지는 눈가에 느껴지지 않을 통증을 느꼈다.
빗속을 뚫고 은밀하게 전해져온 말은 짧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엇보다 중대한 임무였다. 그리고 대답없이 그를 보다 어쩌면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허둥대며 경례를 올리며 대답을 했다. 남자의 일그러진 눈이 조금 웃는 것 같았다.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다. 부대에 있으면서 그 무엇보다 ‘장렬히 전사하라’라는 말보다 더 많은 기대를 담고 있다는 말을, 자신은 지난 9년 동안 수없이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밟게 했던 김 대좌이기에 더더욱 알 수 있다.
‘절대. 죽지마라’라는 소리가 이를 악물며 죽지 않으려 버둥거렸던 9년을 한순간에 뛰어넘어 들려온 소리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대좌의 ‘절대’라는 말이 심장에 내리앉는 듯 묵직했다.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일그러진 웃음을 지은 대좌를 향해 진심을 다해 거수경례를 했다.
그 말없는 경례에 어쩐지 대좌의 눈가가 더 일그러졌던 것 같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돼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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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는 작은 동생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기보다 잔혹한 현실에 맞서야 했다.
자신의 아비는 언제 끌려갔는지 모른다.
자신의 형이었던 자가 언제 죽은지 모른다.
자신의 누이였던 여자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모른다.
단지, 자신에게는 동생들과 모셔야할 오마니밖에 없었다.
다 죽었지만.
Written by. 어쩌다가-
리해진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겁부터 났다.
무서운 사람. 냉혹한 군인. 그리고 괴물로 이어진 그에 대한 인식은 문득 해랑조장이나 류환조장에게 향하는 그의 시선에 얼핏 바꾸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대좌는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무서운 이였다.
아직 채 원류환 조장동지에 대한 격한 감정을 차곡차곡 다 쌓기도 전에 경례하던 그 자세 그대로 그와 마주쳐 뻑뻑하게 굳어버렸다. 그런 자신을 보며 김 대좌는 분명 멍청하다 생각하지 않았을까?하고 시간이 지나서 머리가 조금 더 크고 나서 얼굴을 붉히며 생각했었다.
우의도 없이 거센 비를 그대로 맞으며 다가온 그는 놀라 눈을 댕그러니 떤 자신을 위아래로 훑더니 이내 한 숨을 비 사이로 허옇게 내보냈다.
“..원류환이.. 거......”
그 사이로 나지막히 들린 목소리에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뻑뻑해지는 것 같았다. 아아- 대장님이 자신 때문에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하는 생각에 머릿속에 찬물을 들이부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덥석-하고 잡힌 뒷덜미에 정신을 차렸을 때 덜렁 그 잔상처 많은 큰 손에 덜미를 잡힌 채 물려가고 있었다. 그래, 물려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느낌과 빗속의 어둠에서도 희끗한 느낌의 고동색의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옅은 적갈색의 눈을 가르는 상흔과 굳은 듯한 턱, 그리고 물기어린 얼굴을 딱딱히 굳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더랬다.
마치, 육식동물에게 물려 죽은 시체같이 굳은 초식동물마냥 운반된 자신은 정신이 이제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그....초..총교관도-”
“......”
더듬거리는 말에 혀를 깨물고 싶다. 우..우야네, 내래 때문에 원류환 조장 동지도.... 혼미한 정신 새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알싸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바짝 긴장한 몸 때문에 피가 터진 것 같았다.
대좌는 언제 자신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이었고, 또한 자신을 죽여도 아무런 해가 없을 인물이었으며, 여기서 자신을 죽였다고 누가 뭐라 할 이는 없었다.
그 순간 목숨의 위협에 두려워 떨었을 때 난데없이 들려온 말-
“벗으라.”
“...네..네?”
그.. 크흠- 나중에 들어가서 한 동안 얼굴을 가리고 있게 했던 그 오해성 다분한 말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죽었다 깨어나도 대좌는 몰라야할 것이다.
잠시 잠깐 그를 상당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본디 어린 것들을 데려와 길렀던 고립된 부대다보니 규칙을 무시하고 지 욕구를 채우는 존재들이 몇몇 있었다. 물론, 김태원 대좌의 손에 걸려 다 걸레짝이 되어 본보기로 걸렸었지만....
머리가 하얗고 파랗게 새는 느낌에 주저앉아 조심스레 바지를 내렸더랬다.
물론, 이에 대한 얘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참으로 끔찍하고 참담한 기분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숙소에 있던 동무 중 1명이 어떻게 부대에서 내쫓겼는지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주저앉아 한 쪽에 바지를 가지런히 놓고 일어날 때까지 대좌는 자신을 그저 말끄러미 볼 뿐이었다.
“앉으라우- 꼬맹동무.”
꼬맹..? 잠시 그의 호칭에 멈칫했지만, 이내 배운대로 정좌로 앉아 위에서 터지는 한 숨에 몸이 다시금 굳었다. 아래로 내린 시선에 울컥울컥- 터지는 붉은 피가 보였다.
츳-하고 위에서부터 혀 차는 소리가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자신 앞에 천천히 한 쪽 무릎을 더러운 뒷간 시멘트 바닥에 대는 대좌에 숨을 깊게 들이키며 멈췄다.
들켰다.하는 생각과 각종 이 다음에 있을 일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막일하는 곳으로 갈 수도 있고, 탄광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심한 경우 이대로 목이 잘려 쓰레기 더미 위에 올라갈지도 모른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보이는 근육의 움직임이 멈칫-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아무런 경계도 읍는 몸. 죽일 수 있지 않겠네?
그러나 맞닿아오는 피부와 피부의 뜨거운 감촉에 온 몸이 뻗뻗히 굳었다.
허벅지 상처 바로 아래쯤에 닿은 덕에 더욱 민감한 피부가 훑듯이 쓰는 그 손길에 잔뜩 긴장한 것이 아플 정도로 근육까지 경직되어 갔다. 찬찬히 자신의 품에서 이해할 수 없는 허연 수건을 꺼내 손을 닦고 꺼내는 붕대에 거즈, 약품들에 그저 눈이 커져만 갔다. 뭐네? 지금 뭔 일이 일어나는기래? 우두두두-하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어지럽다.
잔상처가 그득한 손이 긴장을 잔뜩 먹어 피기 여의치도 않을 다리를 펴서 자신의 꿇은 무릎 위에 올린다.
상처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독약이 꼭 독약 같았다.
앙상히 마른 다리 위에 반을 퍼붙고 나서야 약통이 바닥에 닿았다.
“큽... 으...아-”
“......”
그 위를 다시 연고를 잔 상처에까지 바르는 손은 거친 상처를 잔뜩 머금은 것에 비해 무척이나 섬세하게 움직였다. 조심스런 그 손길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입에서 옅은 신음성이 터졌다.
하얀 붕대가 검고 어두운 색의 피부 안에서 천천히 자신의 허연 다리 위를 감기 시작했다. 솜씨 좋게 반창고 위로 둘러지는 붕대에 짙은 연륜이 묻어났다. 어쩐지 보이는 얼굴이 굳어있었다. 정신이 조금 풀린 긴장으로 몽롱해졌다.
“....그만... 들어가 쉬라우. 꼬맹동무.”
조금은 지친듯한 목소리에 그저 머뭇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어......”
당황감이 그득 들어서 다리에 메여진 붕대와 대좌를 번갈아보던 자신의 머리 위에 툭-하고 커다란 손이 올려졌다. 언제인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머리카락을 헤집은 손에 눈을 댕그러니 뜨고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흐릿한 미소가 있었다.
비를 그대로 맞고 와 축축하니 젖은 얼굴은 언뜻 얼어서 그런 것도 같은 그 얼굴.
옅은 색의 적갈색 눈과 꼭 옅게 세다가 만 듯한 잿색도는 고동색의 머리카락과 오른 눈을 가르는 긴 상흔과 언제나 굳은 얼굴로 또는 어딘가 죽은 듯한 얼굴이 만들어낸 미미한 미소.
빗속의 어둠에서 보는 환영인가-
이것은 그러한 것인가-
하고 착각이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그 얼굴이 뇌리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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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도 가끔 자신이 들어가 천을 갈던 칸에 시간에 맞추듯이 깨끗한 붕대와 알약 두어개 놓여있었다. 자신은 그것을 아무런 말없이 받아먹었다.
문득 생각해보면 어쩌면 순진하게도 의심없이 먹은 자신이 멍청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덕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 때의 오묘한 감정은 오래갔다. 이건- 그러니까 걱정이라는거네? 잠시 잠깐 든 생각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왜냐면 그는 김 태원 대좌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것을 ‘기대’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발갛게 되었다.
누군가 기대하고 있다-라는 것이 무슨 감각인지 알아버렸다. 대좌님이, 원 조장님을 위해 좀 더- 좀 더 노력하자. 그리 생각하고 훈련에 늦게 까지 임했다.
시간은 느렸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빨랐다.
칼도, 총도 온갖 지식을 머리에 우겨넣을 때 즘에 나는 대좌님의 입에서 나오는 합격이라는 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고통에 무뎌지고, 차가워졌을 즘에 원류환 조장... 조장님을 만날 자격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조장의 출정 소식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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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까지 찼다.
겨우 인사드릴 자격이 생겼는데!하는 외침이 속에서부터 나왔지만 입까지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고통을 감추며 굳어진 무표정이 이럴 때 그렇게 억울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눈을 피해 소리 없이 빠르게 뛰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비가 어느 새 소나기가 되어 내렸다. 몸을 묵직하게 만드는 비에 짜증이 났다. 마치, 내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산을 넘을 때 그 어느 때보다도 한계에 부딪치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그곳에서 처음으로 리해랑 조장을 대면했다.
그의 작은 친절-일지모를 호의에 원류환 조장 가는 길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빨라야 했다.
앞서가는 조장들과 대좌의 뒤만을 바라봐야했기에, 그들 옆에 서고자 했기에, 그들과 같이 있고 싶었기에 그 무엇보다도 빨라야 했다. 어떤 이가 최연소-라고 놀리듯 말하는 그것에는 자신의 토할 듯한 핏물이 섞여있었다.
“절대. 죽지 마라.”
‘다행이다...’
자신의 앞길을 막던 비가 다행스러웠다. 귓가를 파고드는 대좌의 묵직한 음성에 작은 몸집이 더더욱 다행스러웠다. 이것 때문에 기척을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벽에 등을 기대고 있어도 자신의 기척을 숨겨주니까.
겨우 한 걸음 뒤.
그 한 걸음 뒤에, 내 등 뒤에 조장과 대좌님이 계셨다.
‘목소리라도 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벽에 등을 기대어 미끄러지듯 앉아 무릎을 감싸 앉았다.
부웅-
떠나시는 소리가 들린다.
멀어지는 지프의 소리가 속상했다.
“으...욱-”
기척을 죽이기 위해 참았던 무언가가 떨어져내렸다.
눈가에서 떨어지는 이것은 눈물이 아니다. 그렇게 되내었다. 자신은 울면 안 된다고 배웠으니까. 그러나 감싸는 손 안의 얼굴은 뜨거웠다.
비라면 이렇게 뜨거울리 없는 걸?
-탁! 텁- 탓-하고 벽을 잡고 넘어 조장님이 있던 자리에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고 주저앉았다.
“흐... 흐윽.....”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닭알 두 개. 조장님을 보여드리며 이제 이런 것도 드릴 수 있다 그리 말하며 칭찬받고 싶었다. 천천히 입에 넣는 그 닭알이 목이 메여왔다.
“.....”
“..윽- 콜록-!!”
그런 자신의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놀라 올려다 본 위에는 처음 보는 우산이란 것을 쓴 대좌가 계셨다.
“....맛있네?”
그리 말하며 자신을 보는 대좌는 우산을 쓰고 있는 것과는 달리 흠뻑 젖어있었다.
“......”
천천히 자신이 들고 있던 닭알 중 하나를 들고서는 자신의 옆에 앉은 대좌께서는 정작 자신은 우산을 쓰지 않고 입 안으로 닭알 하나를 우겨넣었다.
“.....맛있네..”
그리 말하는 대좌는 멍하니 얼떨떨하게 보는 자신의 옆머리를 잡아끌었다. 얼결에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게 된 자신은 닿아오는 온기에 저도 모르게 힘겹게 참던 울분을 터트렸다.
어떻게- 어떻게 이 위치까지 왔는가!!!
고향에서 같이 온 동무를 내 손으로 쓰러트렸다.
-그 동무는 탄광이나 막일에서 썩고 있겠지. 그도 아니면, 쓰레기 더미 위에 있겠지. 그 위로 날아다니는 썩은 내는 그의 가족들에게도 나리라.
같은 숙소를 쓰던 동무를 쥐어진 칼로 심장을 비틀어 찔렀다.
-그 동무의 싸늘한 핏물이 자신의 얼굴로 튀었다. 그 시체는 군견의 밥이 되었거나 그도 아니면 바다 저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내 죽여 온 이 심장과 감정의 찌거기를 비틀어 죽였다.
-그 잔해는 심해에 묻혀서 썩은 내를 풍기다 언제인가 자신의 목을 조를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다른 동무들처럼 죽으리라.
“으흑- 으아아아아!!!”
비가 와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 날 밤을 그렇게 울었더랬다.
대좌님은 쓰지 않으시던 우산을 받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 커다란 손이 등을 토닥이는 내내 그렇게 울었더랬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열이 펄펄 났으나 따뜻한 숙소에 이불을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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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3번째.
그 망할 3번이 목을 졸랐었다.
그 녀석은 자신에게 있어 각인과도 같았다.
단지, 내가 외면한 3번째.
그것은 언제나 내 목을 조르는 올가미이다.
‘그 때 깨달았어야 했어.’
몇 번을 그렇게 생각했다.
내 손에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 처음으로 온전히 인식했다.
붉은 피는 뜨거웠고, 눈가는 욱신거렸다
Written by. 어쩌다가-
서수혁
-‘그’는 언제나 자신의 너머를 보고 있었다.
자신은 어렸을 적 외로움이 많았다.
어머니가 있을 적에는 그래도 적적하지 않았었다. 숫기라기보다 그저 다른 아이들보다 어머니와 있는 것이 좋았다. 어머니가 읽어주시는 책이 좋았다. 그랬다.
그냥 어머니랑 있는 것이 좋았다.
언제나 집에 없는 아버지.
그의 존재감은 굉장히 흐릿했었다.
단지, 어쩌다 한 번 왔을 때에도 피곤에 쩌든 모습은 자신에게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아버지, 그와 놀러갔을 때에도 언제나 말썽이라도 일어나듯 그의 휴대폰은 울렸고, 어머니는 이해한다- 그리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자신은 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은 알지 못 하나 그래도 같이 있었을 아버지는 그 죽음에 동참하지 않았었다.
자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습관처럼 어머니의 이해해야만 한다는 말을 되뇌이며 이를 악 물며 영정사진을 끌어안았다.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조문객이 이상할 정도로 없었고, 조용했던 그 3일.
아버지는 얼굴만 비추고... 결국 화장하는 그 날에 겨우 와 울었던 것.
“.....”
그는 어둠 속에서... 그래, 늦은 새벽. 해도 달도 산 너머에 있을 그 시각에 왔다.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 아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4년간 제대로 자지 못 했던 자신이었기에 선잠 중에도 눈을 뜰 수 있었으리라.
만약... 아주 만약에- 그 날 그저 잠으로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떴다면 당신과 나는 뭔가 좀 달라졌을까?하고 속으로 되묻고는 했지만, 여직 답은 없다. 그 날 그 모습을 보지 못 했다면 난 당신을 쫓지 못 했을 테니까.
그 눈 뜬 새벽. 살짝 연 문 틈새로 확- 끼쳐온 피냄새.
거실에 낭자한 핏물 위로 아버지라는 작자가 쓰러져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간 이래 더욱 말수가 없어진 자신과 소원해졌던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은 오른 눈가에서 흐르는 피로 범벅이 된 남자, 김 태원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당신과의 첫 만남이다.
그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감정 없고 차가운 지나가는 밤과도 같은, 그리고 곧 찾아올 뜨거운 격한 감정과 주체할 수 없는 아침이 있는 그런 새벽 같은 만남이었다.
“동무... 내가- 동무를 과소평가했나 보군.”
감정 없이 스산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과연... 공화국 전사 다섯이 동무에게 잡힌 이유가 있었군.”
어쩐지 회한 섞인 목소리에 움칫- 몸을 떨며 그저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눈을 굴려- 자신이 있는 안 쪽 방문을 향해 바라본다. 그에 그의 눈을 따라 올라온 눈이 마주쳤다.
어딘지 깊게 지친 침잠된 것만 같은 눈이 피곤에 찌든 듯이 잠시 뜨고 있는 한 쪽 눈을 깜빡였다. 이내 자신을 빤-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그 무언가의 격한 감정을 가진 자신의 아비에게 말했다.
“걱정 말고 눈 감아도 되네. 동무는 남조선을 위해서- 나는 공화국을 위해서 일한다. 단지, 우리에겐 그것 뿐. 군인도- 뭣도 아닌 꼬맹이까지 죽이진 않갔어. 편히 가라우.”
말을 마친 그는 한 숨을 쉬듯이 몸을 숙였다. 그가 숙이는 동안 점차 기운을 잃은 듯이 색색이던 숨이 줄던 아버지의 눈을 차갑고 감정없던 목소리와는 달리 찬찬히 감겨주는 모습에 차오르는 눈물이 흘렀다.
이럴려고.. 이럴려고 그리 집에 들어오지 안았는가-
이럴려고.. 이럴려고 그리 어머니의 장례 때조차 오지 안았는가-
이럴려고.. 이럴려고 겨우 남은 자신과의 사이를 소원히 했는가-
이럴려고.. 겨우! 이럴려고!!!
턱이 달달 떨려왔다. 소리 하나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그렇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
그렇게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을 향해 한 손으로 자신의 다친 오른 눈을 가린 그가 천천히 자신에게로 몸을 돌리며 일어났다. 그의 왼손에 잡힌 나이프가 날카로운 빛을 머금은 채 어둠 속에서 빛났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그 나이프는 차갑기 그지없는 색채를 띠고 있었다.
“.......”
문득 마주친 눈에 그가 다가옴을 느끼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어떻게 움직이기도 전에 흘러넘치는 눈물처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세례에 이를 악물었다.
“..아.....”
다가오던 그는 이내 자신의 왼손에 들린 나이프를 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한 쪽으로 던졌다. 그 행동에 지금에야 돼서 의문을 품었었다. 천천히 마치, 상처입은 어린 짐승에게 다가가듯 그는 자신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움직였다.
검은 점퍼의 지퍼는 목 끝까지 올라가있고, 입고 있는 바지조차 검었으며, 그 밑단은 피를 흠뻑 머금어 더욱 짙은 색으로 젖어 있었다. 그의 구둣발이 핏자국을 만들며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 어머니가 언제나 깨끗이 닦아놓던 바닥이... 하고 생각할 때- 남자는 천천히 신발을 벗고 맨 발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보지 마라. 애들은... 아직 안 봐도 돼....... 보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눈에 피 묻지 않은 나이프를 들고 있던 큰 왼손을 올렸다. 그리고 한 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아마, 자신은 혼절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그가 기절시켰을 것이다.
“보지 마...”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보지 마’라는 음성은 어쩌면 ‘오지 마’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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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아. 이제 그만... 아버지를 보내줘야지.”
어머니 때보다 더더욱 조문객 하나 없는, 아니.. 아예 없는 장례식에 그저 영정 사진을 안고 자리를 지킨 지 3일째 되는 날 아마도 아버지의 동료였을 남자가 와 그리 말했다.
장례식장 밖 의자에 앉아 끌어안은 사진을 좀 더 꽉 쥐며 말라붙은 입술이 갈라져 말하는 것이 힘겨웠다.
“4년 전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셨을 땐 전 너무 어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엄마도 사고로 죽은 건 아니죠?”
대꾸는 없었으나 그것은 긍정이었다. 그래, 찜찜했더랬다. 평소에도 몇 번이고 신호등과 차에도 조심, 그 무엇에도 조심하던 어머니가 그리 말도 안 되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니-
“지금까지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인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는 알고 계셨던 걸까요?”
옆에 있는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아-하고 깨달았다. 어쩐지 저 너머를 보는 듯한 어머니의 시선도... 못내 늦게 오시는 아버지를 걱정하셨던 것도...
수혁은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느꼈다.
눈가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수혁아, 네 마음은 이해한다만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영웅이셔.”
틀에 박힌 멘트. 수혁은 속으로 드는 생각에 그 말을 커서 다시 생각했을 때 코웃음을 쳤다. 역시 준비해온 멘트였다고....
“영웅? 무슨 국가 영웅이 장례식까지 비밀리에 해야죠? 아저씨. 전 아직 어리지만 세상에서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건 알아요. 아빠가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일이기에 가족보다 우선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수혁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을 뒤로하고 죽음의 끝까지 달려간 아버지도-
“알아요, 아저씨 말씀. 아버지가 훌륭한 일을 하셨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한 번... 한 번 이해해보려고 해요. 정말로 가족보다 우선이었는지....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일인지, 아빠를 이해할 때까지... 저도 해 볼꺼예요.”
흐르는 눈물에 감는 눈에 자신의 떨리는 어깨를 잡는 남자의 손에 ‘그 남자’가 눈가를 가리던 그 손이 떠올랐다.
그 때부터다.
내가 당신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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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져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웃기게도 그의 자신의 아버지가 쫓던 인물은 김 태원 대좌였다. 자신이 쫓던 인물에게 아버지는 살해당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서류에서 이름을 알게 된 김태원은 정작 그에 대한 자료는 한 가득이었지만, 모든 것이 그저 예측이나 정확한 정황 자료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김태원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올라온 북에서 그를 만났다. 첫 재회 때 그는 그 무표정한 감정 없는 그 표정이 눈에 띌 정도로 무너져있었다.
그 때. 그 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가-
그 자신과는 달리 옅은 적색이 섞인 눈에 갖은 감정이 담겼다가 한 순간에 침잠되어 가라앉아 마치, 시체의 눈과 같이 되었다. 그 때 느꼈다. 자신이 아는 김 태원은, 서류 안의 김 태원은, 그 날 그 어둠 속에 있던 김 태원은 죽었다고-
고통에 감았던 눈을 뜨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위협스레 으르렁거리며 그를 보았다. 북에서... 이 낮선 땅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이제 변질되어 채색된 아비의 복수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채 깨달지도 못 한 국가에 대한 충성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쓸모없는 오집 때문일까.....
눈에 빛인 태원의 눈동자가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상처 입은 눈가가 욱씬거리는지 미세하게 눈가를 떠는 것도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할 수 없는 눈의 사내가 이내 이를 살짝 가는 듯 했다. 뭐냐, 내 아비라도 떠올리는 거냐?! 이를 아려 물며 그를 보자 그가 눈가를 살짝 떨고는 등 돌려 사라졌다. 그에 그에게 쏠렸던 정신이 이내 가해지는 고문에 둔탁한 통증을 호소해온다.
아아-
아프다.
감은 눈 사이로 아비의 딱딱했던 영정 사진이 떠오른다.
그리고 뜬 눈을 감기던 큰 손의 감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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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라우.”
휙-하고 던져지는 담배 한 곽을 낚아챘다. 터져 나오는 숨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고통과 약기운으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진정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그에게 의문 섞인 눈초리를 보내는 것만이 간신히-였다.
상표가 뭔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단지, 왜 자신에게 이것을 던졌냐하는 것에 의문이 간다.
그에게 이를 갈고, 경계하고, 죽여야 할 이유는 아버지의 서류와 그가 살고 있는 곳과 그를 주시하는 정부에게서도 수두룩히 나올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은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 의무가 도대체 어느 곳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
그의 앞에서는 북의 군 기준으로 치면 한없이 무례한 자신의 행동에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그 시선에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쥐어진 담배곽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우겨 올라오는 통증에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 격한 심정은 어디서 올라오는 걸까-
매케하게 목구멍을 넘어 내려가 폐에 퍼지고 금세 몸을 도는 연기는 언제나처럼 고통을 완화시켰다.
“...큽..”
겨우 숨 쉴 수 있을 것 같은 그 느낌에 여직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대를 보며 그 시선을 아비가 내었을 상흔에 두었다. 자신은 저 사람의 적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이 의식은 언제나 필요했다.
왜 필요한지 의문을 넘겨둔 체-
그러나 이 헛된 의식은 금세 상대에 대한 각종 의문으로 점철되고는 했다. 생각의 틈새를 비집고 장악하듯 올라온 의문들은 가지각색이었다.
“...계속 할 거냐?”
그 고저없는 감정이 거세된 자신의 조국의 억양에 당황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에 안도를 느낀다. 자신은 남한의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러다 문득 그가 한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는 만다.
혀를 차는 그 모습에 두려움까지 일었으나 언제나와 같이 북한의 병사도, 총구멍도, 날카로운 협박 섞인 말도 없이 그 날 하루가 지나갔다.
그가 왜 자신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지 알지 못 한다.
그 손에 많은 피를 묻혔으면서도 왜 자신을 보는 시선에 후회와 자괴감이 섞여있는지 모른다. 그 죄책감을 외면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보다도 생각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명령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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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다.
그리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맞았다.
단지- 악몽은 그저 되새겨지게 그 무엇으로도 쉬이 낫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꿈은 어느 것인가.
지금의 현실이 꿈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저편 너머의 것이 꿈인 것일까....
나는 이제 알지 못 한다.
그 날. 그 때. 그 곳에서.
‘2명의 나’는 더 이상 공존할 수 없었으며 괴멸해버렸다.
Written by. 어쩌다가-
눈을 감고 떴을 때... 아이들은 모두 자라있었다. 그 중 두 명은 벌써 자신의 곁을 떠나 아래로 각자의 위치로 갔으리라. 이제.. 이제 남은 것은 두 명... 반밖에 안 남았군, 기래. 그런 생각을 하며 회색빛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요 근래 리해랑이가 자신을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물어본다. 원류환이와 자신의 출정일을.... 속이 답답하다. 게다가 겁 없는 리해진이는 조장경합에서 사고를 치지않나...
언제인가 리해랑에게서 뺐었던 담배가 그대로 있었다.
한 개피피고 말았던 그것- 돌려주지 못 했던 그것. 결국 자신의 것을 건내야했던 그것을 한 개피 꺼내 입에 물었다. 여상스럽게도 자신과 같은 것을 피고있었다.
독하디 독한 것을... 피고 있었다.
‘..미친 선스나같으니라고-’
뭐가 그리 타길래 이리 독한 것을 피나....
눈을 감으며 이제 곧.. 다가올 그의 출정일을 속으로 센다.
원류환이가 떠난지 2년이 되어온다.
그 이전에 떠난 서수혁이는 이제 5년쯤 되네?
“후우-”
공기 중을 흩날리듯 퍼지는 회색의 연기가 그저 회색칠한 벽보다 희다.
시간은 죽음과 같이 다가온다. 태원은 그렇게 느꼈다. 좀 있으면.. 그래, 좀 있으며 오리라. 해랑의 출정일과 함께- 해진의 출정일과 함께- 그 짤막하디 짤막한 시간이....
그러기위해 노력했노라-
그러기위해 떨리는 손에 피를 묻혔노라-
그리기위해 부서지는 정신의 잔해를 누덕누덕 이어붙여 여기에 있노라-
“후우- 고조, 간나새끼... 더럽게 독한 것도 피는구만, 기래?”
목을 매케하게 매우는 연기에 목이 메여온다.
아아-
오랜만에 어머니의 사진을, 가족들의 사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눈물은 흘릴 수 없을지언정....
복수는 해드리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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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해랑이...”
“넷! 대좌-”
“리해랑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해랑은 멈칫- 천천히 군모 위로 그를 보았다. 대좌가 보는 곳은 어디일까? 그러고보니 그가 웬일로 자신을 관등성명으로 부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이제 막 출정하기 10분 전이거늘..... 해랑은 속이 검게 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하늘을 보던 태원이 천천히 해랑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옅은 색의 적갈색의 눈과 봄의 기운을 완연히 가지고 있는 갈색과 연둣빛이 섞인 시선이 얽혔다. 언뜻- 해랑은 옛적의 그와 만났을 그 눈오는 날을 떠올렸다.
“죽디 말라.”
그리 말하는 태원의 말에는 그리 힘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 하나만으로 해랑은 기운이 났다. 찬찬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을 보던 태원이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 담배가 어쩐지 해랑의 눈에 익숙했다.
“내래....”
천천히 말을 고르는 태원에 해랑은 바짝 긴장했다. 대체로 이런 경우 자신은 꽤 혼나는 경우가 많았더랬다.
“느그한테 읽어준 책... 말... 기억하네?”
“? 기억합니다!”
“기래?”
뭔고 했더니... 그런 거 당연히 여직 기억한다. 본처가 자신의 귀애하는 아들에게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그리 부럽지 않았던 것은 태원의 집에 그의 무릎에 앉아 그가 무작정 꺼내 읽어주던 많은 책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미하게 웃는 태원에 해랑의 몸이 뻣뻣이 굳어진다. 어, 씨..씨부럴. 뭐 내래 잘 못 한기고? 한 참을 잘 못 집었으나 알 길이 없는 해랑의 머리 위로 툭툭-하고 커다란 손이 닿았다 떨어진다.
“-원래 매도 일찍 맞아야 편한 법이야.”
왜 이런 말을 할까-하는 의문보다 토닥이는 손에 아예 정신이 쏙 빠지는 것 같았다. 어..어우- 이기 몇 년.. 몇 년만의 토닥임이네?!?? 해랑은 태원의 생각과는 달리 출정하게 징징거리기를 잘했다 스스로를 칭찬했다.
“아.... 담배 작작 피라. 엄청 독하구만 기래.”
잠깐 뒤돌아서 자신에게 던지는 무언가를 얼결에 잡았다.
빈 담배곽. 언제인가 빼꼈었던 해랑의 것이었다. 해랑의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담배곽을 보았다. 오늘은 길일인가. 내래 계탔네? 그런 생각에 실실 웃던 해랑은 이내 손에 들린 담배곽을 조심히 군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당신은 알까? 내가 담배를 피기 시작했던 것은 당신이 피고 있었기 때문이라- 유독 고집했던 그 담배... 북한에서, 군에서는 사치품인 이 담배를 유독 피고 싶었더랬다.
그 언제인가 당신 집에서 훔쳤다가 발목이 잡혀 거꾸로 털털 털렸던 어이없는 벌을 받으면서도 쥐고 있었던 그 담배... 당신이 폈기에 핀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끊어야 될 성 싶었다.
“하핫-”
해랑은 지프에 타는 자신의 속으로만 부르는 아비에게 웃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그 다운 경례였다.
내래의 아비는 그 누구도 아닌 당신입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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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뻑하니 긴장한 꼬맹동무를 한참을 물끄러미 내려보는 태원에 꼬맹동무, 리해진은 더더욱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물론, 단련된 그 무표정에는 일절의 이상도 없었다.
“....하아-”
“....”
뱉어지는 한 숨이 깊다. 해진은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아.. 어쩌면 자신은 대좌님을 난처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해진은 반쯤은 자신의 고집이 강했던 이번 출정에 눈을 굴렸다. 서상구 동무의 일로 남조선에 내려갔다 왔다는 대좌님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것도 근래의 일이라 더더욱 생각이 엉켰다.
“....기래, 원류환이가 그리 보고싶던?”
“넵! 그..아아..아니, 그게-”
꼬인 생각 중에 툭하니 튀어나온 질문에 얼결에 진심으로 대답해버렸다. 해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느그는 그 놈의 홍조증 좀 치우라우... 그리 속으로 생각한 태원은 답답해지는 속에 남조선의 X보린이 그리워졌다.
“기래.. 그렇구만...”
“.......”
빨개진 얼굴로 입을 꼭 다문 해진을 보다 하늘을 올려다 본 태원은 어렴풋한 새벽을 보며 혀를 찼다. 꼭 지들 같은 날에 날래 가는구만, 기래? 태원은 그대로 하늘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살라우.”
“...넷!”
해진은 그 말이 기뻤다. 아아- 류환 조장님과는 다르지만 그 뜻은 같은 말이 기뻤다.
“죽디 말라우.”
“넷!”
그러나 이어서 들리는 그 말에 격해지는 감정이, 그 소년 때의 것처럼 들썩였다.
‘꼭.... 말풍선이 보이는 것 같구만, 기래. 꽃 모양의.....’
태원은 짜게 식은 눈을 여전히 하늘을 올려놓은 채 옛 저녁에 남조선으로 내려보낸 수혁을 떠올렸다.
그 날은 어두워지는 저녁노을이 뜨는 날이었다.
[“..죽지 마라.”
“..네.”
태원의 말에 묵묵히 태원의 옷자락만 보던 수혁이 늦은 대답을 했다.
태원은 그 모습이 꼭 반항하는 똑똑한 엘리트의 그것 같아서 한 숨이 나왔다. 꼭 그런 녀석들이 영혼까지 털려서 벌어지고는 한다.
“....넌-”
“...?”
한 참을 자신을 보며 뜸을 들이는 말에 수혁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마주치는 눈이 참으로.. 뭐랄까, 한심한 무언가를 보는 눈이라 당황했다.
시체 같은 눈이 아닌 눈이라는 것도 나름 당황스러운데 그런 눈이라니-
“그래, 자기 생각도 하면서 살아라. 좀.”
“...????????”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전에 천천히 태원의 손이 들렸다.
그리고 가해지는-
-딱.
“..윽-”
“아프냐?”
“....?!????”
강력한 딱밤에 리해진과는 다른 의미의 포커페이스를 자랑하던 수혁의 얼굴이 무너졌다. 어벙해진 그 얼굴에 태원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야 애새끼다운 얼굴이 올라왔구만, 기래? 여직까지 태원은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다른 것들도 그런거야. 너도 나도, 다른 이들도... 피를 흘리는 건 매한가지니까.”
그렇게 말하는 태원은 이내 몸을 돌려 지프로 향했다.
그 지프가 사라지고 나서 이마를 쓰다듬던 수혁은 한참을 다른 지프가 올 때까지 어처구니없는 정신을 추스르지 못 했다.
태원은...
자신의 너머가 아닌 정확히 자신을 보고 말했다.]
아마 그 때만큼 통쾌한 딱밤이 없으리라 태원 안의 작은 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고- 속 시원타. ...리해랑이도 그렇게 딱밤을 때렸어야 했는디.... 태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해진을 껴안았다.
“어...어윽?!??”
붉어진 해진의 얼굴과는 달리 껴안은 태원의 은밀한 속삭임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해랑에게 주라우. 그럼 될 거야.’ 그리 말하는 속삭임과 함께 자신의 군복 안으로 조용히 말려 들어오는 얇은 종이 뭉치의 느낌에 몸이 딱딱히 굳었다. 해진의 눈이 미미하게 빛나며 조용히 태원의 등을 마주 껴안았다.
“네. 대좌님. 살아남겠습니다.”
“...그래.”
해진은 알까- 그의 등을 안고 벽을 바라보는 태원의 일그러진 눈을.
태원은 알까- 그의 등을 안고 저 너머의 바다를 보며 발게진 해진의 볼을.
동상이몽이구나, 이게. 오랜만에 속으로 생각한 말은 남조선 말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꿈과도 같았던 그 곳의 말.
또 다른 자신의 고향.
그러나 지금은 적이어야 했던 그 땅.
한 번 해진의 머리를 부비고 등 돌린 태원의 얼굴이 뒤에 밝게 빛나는 것만 같은 해진의 얼굴과는 달리- 언제 적인가 비오는 그 뒷간의 그 날 처럼 깊게- 깊게- 아주 깊게 침잠되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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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천천히 군모를 쓴 태원이 문득 비치는 거울에 쓰게 웃었다.
해진이 내려간지 며칠이 지났더라? 분명... 하루? 이틀? 그 정도 되었으리라. 여직 딱딱하게 굳어 침체되어있는 얼굴. 그 얼굴은 아주 옛적 숨겨두었던 얼굴이었다. 다시 꺼낸 그 얼굴이 역한 피 냄새가 줄기줄기 흐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앞으로 그리 흐를 것이라는 것을 안다.
“......”
천천히 삐걱이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 위에 타들어간 무언가의 잔해가 연기만을 매케하게 올리고 있다. 마치, 무언가의 봉화와 같았다.
신임.
직위.
명분.
그것이 맞추어졌다.
아니, 맞추어지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손을 썼으니까. 그들과 내가. 그렇게.
“헛- 추..충!”
“......”
지나가는 길로 바짝 굳은 교관과 훈련생도들이 보인다. 마주친 이 중 황재오와 최완우가 각자의 다른 이유로 굳은 얼굴로 자신을 보며 경례한다. 그네들을 흘끔 보고 ‘위’에 간다.
그리고-
자신은 내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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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어느 훈련병 이야기(부제: 그만 하라고, 니들.)
총교관 김 태원 대좌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어느 교관들보다도 무서웠다. 안 무서울 수가 있나... 그는 5446부대를 키워내는 괴물이었다. 이런 표현은 조금 웃기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아비 괴물이나 마찬가지리라. 어.. 그렇지만.. 그러니까-
“콜록- 콜록!”
“.....저거 또 저러네?”
“몰라. 냅 둬. 포기하면 편하댔어.”
“..누가?”
“..교관 동무?”
같은 훈련병과 시답잖은 말을 하며 콜록 이면서도 끝까지 입에서 구름막대를 때지않는 리해랑이를 보며 한 숨을 쉬었다. 저거 교관이나 총교관께 발견되면 분명 혼날 텐디...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불쑥- 튀어나온 총교관 동무에 활들짝 놀랐다. 뭐..뭐네, 뭐네?!? 내 신끼있네?!??
“.....리해랑이.”
“...저 18살임네다, 총교관 동무.”
...쿨럭- 리해랑이가 답지 않게 슬픈 눈으로 총교관 동무를 올려보며 꼭 복날의 개새끼마냥 낑낑거렸다. 너 누구냐, 간첩이냐? 내 눈을, 그리고 다른 동무들의 눈을 의심케하는 모습에 기겁이 났다. 저 아는 왜... 꼭- 하필!!! 총교관 동무 앞에서 저러나 모르겠다!
“.....”
-딱!
그럴 줄 알았지. 아직 쓱싹- 순살(瞬殺)당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총교관 손에 들려 사라지는 담배를 집요한 눈으로 보는 리해랑에 한 숨을 쉬었다. 듣자하니 리무혁 동지가 아바지라던데... 그래서 살아남은 걸까?
그러나 딱히 그래서 살아있다고 보기에는 총교관 동무는 리해랑 동무를 무척. 정말로 무척이나 험하게 교육시켰다. 마치, 꼭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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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원류환이 오성조 조원으로 뽑혔을 적에 있었던 일이었다. 같은 때에 리해랑은 흑룡조 조원이 되었다. 아마, 그 이유로 그 둘이 자주 붙이쳤던 것 같았다.
“..........”
“............”
총교관이 아무 말 없이 원류환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장면을 뒷간을 가던 중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순간 돌아가셨다는 할매가 눈 앞에 지나간 것 같았다. 아- 할매... 거 손 흔들지 마소. 내래 쉬야 지릴 뻔 했잖수- 내 난생 내 존재감이 그리 없던 것을 감사했다.
“.....잘했다.”
“.........”
난 그 날 원류환의 발갛게 물든 얼굴을 처음 보았다.
...내 눈이 이상해. 아무래도 검사해야 할 것 같습네다, 동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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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혁.
아마도 우리보다도 나이가 있는 채로 들어왔던 것 같다. 그 녀석은...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할까.... 간이.... 그래, 간이...
‘존나 큰 새끼...’
리해랑보다 어떻게 살아있는지 궁금한 동무였다. 세상에.... 총교관 동지를 그리 살벌하게 노려보고 교육 때마다 그리 공격하고도 살아남는 건 그 깡따구 때문이네?! 그런기네?!?? 허구헌날 처 맞으면서 총교관 동지를 뚫어져라 살기넘치는 눈으로 보는 것을 내래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왜 자꾸 나만 목격하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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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해진이는 최연소로 이 부대에 들어왔다. 참으로 어린 나이... 그래, 무척이나 어린 나이였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어린 모습이 남들에게는 어떻게 뵈였을지 모르나 적어도 나에게는 어쩐지 고향에 있는 동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 어린 나이에 바락바락 이 험한 부대를 헤어나가는 게 대견스럽기도 하고 어쩐지 집에 있을 동생의 모습 같아 슬프기도 했다. 여하튼... 그런 놈이 조금 이상한 낌새를 보였을 때는 남들보다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 예를 들어 고놈이 오성조 조장이 된 원류환이를 홍조 띈 얼굴로 바라본다던가...
아니, 리해랑보다는 차라리 낮기는 한데... 고지식하고 융퉁성없는 놈을 하필... 에효-하는 한 숨이 절로 났다. 아.. 기..기래- 거는 이해하갔어. 고놈이 워낙에 난 놈이어야지... 가끔 늦게까지 훈련하는 모습이 감탄스럽기는 했더랬다.
근데, 야... 그건 좀 아니지......
‘왜하필총교관에게까지홍조를붉히는가-’
아마도 5446 3대 미스테리가 아닐까?
나는 그 날도 눈을 부비며 내 눈을 의심했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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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혁, 원류환, 리해랑, 리해진.... 그리고 다른 조원들이 하나하나 남파할 때마다 어쩐지 총교관이 얼굴이 흐려짐을 느꼈다. 왤까? 그는 어째서 남으로 가는 이들을 배웅할 때마다 흐린 얼굴을 할까? 그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잔상처 많은 얼굴을 그리 만드는 걸까? 왜 비오는 날만.. 그 어두운 밤 비오는 날만 되면 지급되는 우의도 걸치지않고 밖을 나도는 걸까? 왜 이제는 피지않는 담배를 입에 물까? 왜 도검의 잔흔적이 남은 훈련장을 서성일까? 왜 닭알을 그리 빤히 바라볼까?
나는 총교관 동지를 알 수 없었다.
“...죽지 말아라.”
그리 말하는 총교관 동지의 얼굴이 왜 그리 지쳐 보이는지 난 알 수 없다.
-풍산조 제3대 조장의 일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