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전력

[스터디]그대를 덮고 꿈을 꾼다.

블군ㅎwㅎ 2016. 2. 21. 22:58

12회차

주제: 그대를 덮고 꿈을 꾼다.


눈을 흐리게 감아도 세상은 잘 보였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이 보일 리는 없었지만, 사내는 눈을 껌뻑였다. 흐릿한 윤곽만이 어설프게 잡힌 어린 그림자의 손이 자신을 향해 쭉 뻗어온다. 마치, 달달한 블랙 베리 향이 독하게 나는 것처럼 머리가 띵하니 아파왔다. 하얀, 아니 검은 손은 작았고, 여렸는데도 사내의 얼굴을 잡는 손에는 거침이 없었다.

사내는 피할 수도 있을 그 손에 얼굴을 맞기며 눈매를 휘며 웃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어린 인영도 따라 웃는 것 같았다.

키득키득 거리는 낮선 웃음 소리를 들으며 그 검은 손바닥에 얼굴을 부비자 이내 그 흐린 윤곽이 흔들리며 사내의 위로 쏫아져 내려왔다. 아마도 이마 위에 얕은 키스라도 했는지 이마 깨가 보들거렸다. 조심히 뻗은 손에 거부감 없이 닿는 희미한 온기가 아련하게 그리움을 품고 있다. 사내는 그 익숙하지 않은 그리움이 낯설면서도 설레었다. 익숙하지 않은 감촉에 익숙하지 않은 체향과 체온은 이상하게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꺄르륵 웃는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손에 닿는 곳곳을 만지는데도 뚜렷이 느껴지지 않는 윤곽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사내는 적어도 지금은 개의치 않았다. 닿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족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흐린한 윤곽만으로 여릴 법한 상대가 그의 손길에 할딱이는 숨을 토해냈다. 닿은 곳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사내가 촉촉 여릴 그 이마에 입을 맞추며 키스했다.

부서질 것 같이 어른대는 흐린 윤관의 구름같은 머리, 더듬더듬 그 아래로 그저 상상만으로도 꿈같을 장난기 어릴 눈, 간지럽다고 찡긋거릴 콧대와 콧망울, 툴툴 거리면서도 웃을 입매, 가냘플 것 같은 목과 이제 막 튀어나오기 시작했을 울대에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닿은 곳이 간지러운지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온다. 사내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숨을 삼키며 같이 웃고 애태우듯 그 여린 어깨에서부터 천천히 손을 내려 가슴을 지나 마른 배를 타고 내려갔다.


닿은 곳 마다 일렁이는 흐린 윤곽이 상대의 반응인 것 마냥 보며 사내의 눈이 다시금 예쁘게 휘어졌다. 기뻐, ---. 내뱉은 이름은 흐린 윤곽마냥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촉-다시금 그 이마에 입마추고 흐린 육곽 사이에 자리를 잡은 사내가 낮은 숨을 토해내며 아직 여물지 못 했을 복숭아 뼈가 있을 법한 곳을 잡고 몸을 깊숙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작고 흐린 윤곽이 흔들리며 입을 열듯이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하는 걸까, 자세히 귀를 기울이려 몸을 숙이는 사내에 흐린 윤곽이 크게 흔들렸다. 사내가 눈을 크게 뜨자-


"허억..... Shit!"


망할 꿈이었구나.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사내가 눈가를 찌푸리며 이불을 들추자 남사스럽게도 축축해진 이불 가운데가 보였다. 오, 망할! 다시금 욕을 내뱉은 사내가 마른 세수를 하며 고개를 들자... 언제 온 것인지 모를 편지가 다소곳이 그의 머리맡에 올려져 있었다.

오..오오, 망할!! 다시 터져나오는 욕설에 우당탕탕 밑에서 놀란 기척이 느껴지고 이내 똑똑- 음...저기..하고 부르는 소리가 문 밖으로 들렸다. 사내는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고 거칠게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금 제 얼굴에 손을 묻었다.

빨갛게 물든 얼굴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망할.. 나 진짜 페도필리아인 건 아니겠지?'


슬픈 고민 한 스푼과 아쉬운 한숨 조금, 찝찝한 감이 섞인 찌푸린 눈가가 사내는 마냥 어색했다.

그는 차마 편지를 펴 볼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후에 얼마나 큰 자책으로 올지는 그도 꿈에도 몰랐지만...

꿈에서 그가 덮었던 이불마냥 누구인지 모를 편지의 상대에게 모락모락 피어난 연정은 적어도 그 날 만큼은 부끄럽고 쑥쓰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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